[딜사이트 박관훈 기자] 디지털 기술을 앞세워 출범한 캐롯손해보험·교보라이프플래닛 등 디지털 손해보험사들이 차별화에 실패하면서 자본건전성 위기를 겪고 있다. AI 기반 언더라이팅(보험 가입 사전심사)과 ALM(자산부채관리) 체계가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으면서 기존 보험사와의 경쟁에서 이점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모회사에 대한 자금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흡수합병을 앞둔 상황이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캐롯손해보험의 지급여력(K-ICS·킥스)비율은 68.6%, 교보라이프플래닛은 130.1%로 나타났다. 금융당국 권고 기준인 150%를 모두 하회하며, 자본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특히 캐롯손보보는 작년 말 대비 87.6%포인트 하락하며, 100% 이하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662억원의 적자를 낸 캐롯손보는 올해 1분기에도 14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손해율은 90%에 근접하며 수익성을 크게 훼손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속적인 손실로 인한 자본 잠식 탓에 자본건전성 관리 부담이 커졌던 캐롯손보는 결국 오는 9월 모회사인 한화손해보험과의 흡수합병을 앞두고 있다.
업계에선 디지털 보험사들의 기술 전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특히 AI 기반 언더라이팅의 정교하지 못한 리스크 평가, 미비한 ALM 체계가 수익성과 건전성 저하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AI 기반 언더라이팅이 정교한 리스크 평가 없이 일률적 패턴에만 의존하면, 도리어 고위험군을 과소평가하게 된다"며 "이로 인해 보험금 지급이 급증하면서 손해율이 상승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보험연구원도 최근 '디지털 전환 시대 보험산업 대응 및 감독·규제 방향에 대한 제언' 보고서를 통해 "보험산업의 디지털화가 전개됨에 따라 사전에 사고를 예견하고 예방하는 언더라이팅이 더 강조되고 있다"며 "AI 기반 언더라이팅 등의 기술과 그에 따른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평가해 발생한 손해에 대한 정확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롯손보는 퍼마일 자동차보험 등에서 텔레매틱스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언더라이팅을 도입했으나, 사고율 예측 정밀도가 낮으면 손해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비대면 중심의 영업 구조, 단기보험 위주 상품 구성 등도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AI 기반 언더라이팅은 캐롯손보의 주력 상품인 '퍼마일 자동차보험'에서 텔레매틱스 데이터를 활용한 자동 평가로 작동한다. 그러나 사고율 예측이 정밀하지 않으면 손해율이 상승하고, 보험금 지출 급증으로 자본건전성이 약화되는 구조다.
교보라이프플래닛 역시 기준치를 하회하는 킥스비율 탓에 구조조정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장기 보장성 상품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갖췄지만, 운용자산의 상당 부분이 단기 유동자산에 편중돼 ALM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금리 하락 시 부채의 현재가치가 급증하면서 킥스비율이 빠르게 하락할 수 있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교보라이프플래닛이 모회사인 교보생명의 추가 자금 지원 또는 흡수합병 대상으로 부상할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3월 1250억원 출자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3300억원 이상을 교보라이프플래닛에 지원했다.
이와 관련해 디지털 손보사들은 기술적 실험과 혁신을 통해 일정 성과를 냈다는 입장이지만, 기존 보험사와 비교해 AI 언더라이팅·ALM 기술 차별화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캐롯손보 관계자는 "데이터 분석, 보험 인수 자동화 등 기존 보험사가 시도하지 못한 디지털 기술을 실험적으로 적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수익성 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대면채널 부재, 단기보험 위주의 상품 구성 등도 수익성을 끌어올리지 못한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도 "디지털 보험사는 위험을 감수하며 업계에서 먼저 기술을 실험해온 개척자"라며 "이들이 이끈 산업 내 기술 혁신의 가치는 평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손보사가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자 금융당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지급여력 기준을 밑돈 디지털 보험사를 중심으로 ALM 체계 적정성 점검에 착수했다. 아울러 보험업감독규정 개정 및 '건전성 중심 디지털 보험 활성화 가이드라인' 마련을 통해 AI 언더라이팅, 자동차 수리비 추정 등 디지털 기술 도입을 지원할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감독할 계획이며, 빅데이터 기반 인프라를 보험업권 전반에 확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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