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SK하이닉스가 주문형반도체(ASIC)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처 다변화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그간 HBM 매출의 약 90%가 엔비디아에 쏠려 있었던 구조가 점차 완화되는 움직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엔비디아가 벤더를 다양하게 가져가려는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고객사를 늘리고 매출 다변화를 통한 수익성 강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ASIC 수요가 늘어나도 여전히 엔비디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HBM에서 주도권은 놓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 HBM 매출의 약 90%가 엔비디아에서 발생했는데, 올해는 이 비중이 80%로 낮아진 것으로 집계됐다"며 "내년에는 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HBM은 고객사와 1년 전에 공급 물량을 합의하는 구조여서 전망치 예측이 비교적 용이한 편이다. 80%라는 수치도 지난해 맺은 계약 기반으로 나온 결과다. SK하이닉스의 HBM3E, HBM4 등 내년도 엔비디아 공급 물량은 이달 중으로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다.
이처럼 엔비디아 비중이 소폭 낮아진 것은 SK하이닉스 HBM 사업 내에서 ASIC 관련 매출이 증가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최근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의 ASIC 신제품 출시가 임박하면서, 관련 수요 확대 기대감에 SK하이닉스의 HBM 제품 문의도 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 매출 증가로 이어지면서 엔비디아 비중이 줄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80%라는 수치를 놓고,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에 대응해 타 고객사와의 접점을 확대하며 의존도를 낮추려 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엔비디아 입장에서 SK하이닉스의 HBM은 성능이 뛰어나지만 가격대가 높다보니 납품업체 다변화에 대한 니즈가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국 기업에 대한 힘 실어주기가 강화되면서 마이크론의 엔비디아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최근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엔비디아가 벤더들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기류를 감지하고 타 고객사들과의 접촉을 한층 공격적으로 늘리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며 "엔비디아 역시 SK하이닉스와의 협업 관계에서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는 분위기라 고민이 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보다 ASIC 기반 수요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매출처 다변화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가능하면 엔비디아 물량 대응을 많이 하려고 한다"며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꼽히는 AMD에 납품하는 물량도 사실 그리 크진 않고, ASIC 수요가 늘어난 게 주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주요 빅테크들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고자 ASIC 시장 1위인 브로드컴 등에 ASIC 주문을 늘리고 있고, 이 과정에서 고성능을 구현하기 위해 SK하이닉스의 HBM 수요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브로드컴은 앞서 HBM3E에서 SK하이닉스의 제품을 가장 먼저 승인, 올해 초 주문량을 크게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초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HBM 매출은 지난해보다 10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특히 ASIC 기반의 HBM 고객 수요가 의미있게 증가하고 고객 기반도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한편 SK하이닉스 입장에서 ASIC 매출이 커지면 평균판매단가(ASP) 인상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대신증권은 최근 리포트를 통해 "GPU와 ASIC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엔비디아를 시작으로, 비 엔비디아 진영으로 HBM4 고객의 저변은 넓어질 것"이라며 "엔비디아 대비 구매력이 약한 비 엔비디아 진영으로의 고객 저변 확산은 타이트한 수급 여건을 감안 시 ASP 인상 기회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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