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와 내년도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물량에 대한 가격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가격 인상 폭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HBM3E에서 HBM4로 넘어갈수록 제조 원가가 급격히 높아지는 가운데 현재로서는 SK하이닉스의 가격 협상력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의 HBM3E 제품에 대해서도 가격 인하 압박을 가하면서 원가를 제품가격에 반영하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엔비디아가 공급 다변화를 시도하면서 마이크론 등 경쟁사가 늘어나고 있어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다소 포기하면서 제품을 납품해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는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납품할 HBM4 양산을 준비 중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 3월 엔비디아에 HBM4 12단 샘플을 가장 먼저 전달, 현재는 하반기 양산 이관을 앞두고 샘플 탑재용 물량을 납품하는 등 사실상 HBM4 시장에서도 '퍼스트 벤더' 지위를 이어가고 있다. 3사 가운데 첫 번째로 '수익성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다만 HBM4부터는 SK하이닉스도 경쟁사의 공급망 진입으로 인한 가격인하 압박으로 인해 납품 단가를 크게 올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HBM4 12단은 전작인 HBM3E 12단과 비교해 원가가 30% 정도 뛴다"며 "지금처럼 엔비디아가 단가 인하를 압박하는 상황에서는 실제로 제품 가격을 20% 정도 올리는 데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HBM4 가격을 인상해 수익성을 높이기는커녕, 단가 인상분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HBM4의 제조 원가가 전작인 HBM3E 대비 크게 상승함에 따라, 핵심 고객사인 엔비디아를 상대로 제품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HBM4는 전작 대비 I/O(입출력) 단자가 1024개에서 2048개로 두 배 늘고, 다이 크기도 확대되는 등 설계가 한층 복잡해 원가 상승 압력 또한 커진다.
특히 SK하이닉스는 HBM4의 '베이스 다이' 제작을 TSMC에 맡기면서 비용 부담이 더욱 가중된 상황이다. 앞선 관계자는 "이 때문에 최근에는 다른 제품군과 마찬가지로 HBM 비용 효율화를 위한 팀을 소규모로 구성해 원가 경쟁력 강화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가 HBM4 제품 가격에 단가 인상분을 제대로 보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엔비디아로부터 내년도 HBM 물량을 배정 받았다"며 "통상 연 단위로 책정하지만 현재로서는 상반기 물량까지만 논의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이 물량에 대한 가격 협상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SK하이닉스가 최근 엔비디아로부터 기존에 납품 중인 HBM3E 제품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도 받고 있어, 가격 인상이 유의미하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엔비디아는 최근 단가 인하를 위해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급 업체 간 가격 경쟁을 유도하며 저울질에 나선 분위기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총 마진율(매출총이익률)이 낮아진 바 있다. 지난해 1~2분기 기준 80%에 달했던 마진율은 4분기로 들어서면서 70% 중반대로 하락, 올해 1분기에는 70%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앞선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GPU 원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HBM이며, 이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라며 "이 때문에 엔비디아 역시 내부적으로 원가 절감에 대한 고민이 많다. 현재로서는 삼성전자가 하루빨리 공급망에 진입해 물량을 확대하며 가격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를 바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업계에서 엔비디아가 HBM 퍼스트벤더인 SK하이닉스와 내년 상반기 물량까지만 협의한 것을 두고, '삼성전자의 공급망 진입 가능성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역시 엔비디아의 HBM3E 12단 제품 퀄 테스트를 통과하면 제품 가격을 크게 낮춰 '물량 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반도체(DS) 사업부 내에서도 '하반기부터 물량을 쏟아낼 것'이라는 메세지가 공유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수율을 확보한 후에 제품 공급에 나섰다면, 최근에는 수율이 낮아도 일단 시장에 물량을 투입하는 기조로 전환됐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수율 등 공급 업체의 내부 생산 지표보다, 자사가 원하는 물량을 제때 제공하는 '납기 대응력'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도 이를 의식하고 생산량을 늘리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시장에서는 최근 제기되는 'HBM 공급 과잉 우려'가 다소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흥국증권은 최근 리포트를 통해 "AI 수요 강세 신호를 감안하면 가격 협상력 악화에 대한 과도한 우려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며 "xAI, OpenAI, Meta 등 프론티어 모델 개발 업체들의 경쟁 심화, H20 대중 수출 허가 등 오히려 HBM 수요 업사이드가 기대되는 소식이 많이 들려오고 있다"고 내다봤다.
IBK투자증권 또한 "수요 측의 변동은 예정된 생산량과 실소비 간의 일시적인 시차를 유발할 수 있으나, 이를 구조적인 공급과잉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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