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모험자본의 역할이 커지며 벤처투자 시장에도 새로운 기대가 모이고 있다. 다만 시장의 마중물이 되는 출자 규모가 확대될수록 대형 운용사로의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정책·민간자금 유치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운용자금을 총괄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의 존재감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유력 벤처캐피탈리스트를 조명한다.
[딜사이트 김현호 기자] 이준표 SBVA 대표는 국내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손꼽히는 영건 CEO로 평가된다. 대학 시절 창업과 엑시트를 거듭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굴지의 하우스를 이끌고 있다. 글로벌 테크 거물들과의 네트워크가 자산으로 꼽히지만 하우스의 태생적 구조는 국내에서 늘 추가 설명을 요구한다. 외형은 커졌는데 국내 제도권에서의 움직임은 유난히 조심스럽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준표 대표는 창업 생태계에서 먼저 유명세를 떨쳤다. 2001년 카이스트 재학 시절에 웹 기반 PC 원격 제어 플랫폼 에빅사를 창업해 LG데이콤(현 LG유플러스)에 매각하며 성공한 창업가로 평가받았다. 2007년에는 동영상 솔루션 기업 엔써즈를 세워 미국 기업에 매각하면서 연쇄 창업가이자 혁신경영인으로 역량을 다시 입증했다. 두 번의 창업과 연이은 매각 성공의 경험은 기술을 사업으로 바꾸는 과정을 직접 뚤어낸 경영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준표 대표의 창업 서사에는 소프트뱅크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에빅사와 엔써즈 모두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연결고리를 통해 지난 20년 간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오게 됐다는 평가다. SBVA는 2000년 소프트뱅크그룹 산하의 창업투자회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시작했고 이 대표는 이후 2015년부터 합류해 2018년 이후에는 대표이사로 급을 높여 일하고 있다.
SBVA는 현재는 소프트뱅크와 직접적인 지분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라는 정체성에 나타나듯 손정의 회장의 동생인 손태장 미슬토 회장의 영향 아래에 있다. 손태장 회장은 디에지오브(The Edgeof)를 설립한 이후 2023년 6월 SBVA를 인수했다. 디에지오브는 지분 취득 목적으로 세워진 투자 비히클로 추정된다. 소재지가 싱가포르인데 상대적으로 유연한 제도 환경과 세제 측면의 이점을 고려해 해외에 거점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준표 대표는 오픈AI의 아버지인 샘 올트먼과 절친으로도 유명하다. 2025년 2월 올트먼이 한국을 찾았을 때 에스코트 역할을 맡았고 같은 해 10월 올트먼을 내세운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인터뷰어로 나서기도 했다. 올트먼이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를 이끌던 시절부터 맺은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진 결과다. 또 이 대표는 손정의 회장에게 올트먼을 직접 소개해 오픈AI와 소프트뱅크 간 협력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한화, SK, 쿠팡 등을 주요 출자자(LP)로 확보하며 네트워크를 강화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엔 재계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친분을 두텁게 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0년 가까이 SBVA를 이끌면서 운용자산(AUM) 약 2조2000억원을 관리하는 국내 주요 하우스로 발돋움 시켰고 전 세계 100곳이 넘는 포트폴리오를 발굴하며 글로벌 투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SBVA는 모회사가 국내 기업이 아닌 구조적 특성으로 당국의 관리·감독에 있어 투명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단 지적을 얻는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국내 VC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지만 모회사 소재지가 해외일 경우 지배주주 차원의 의사결정 라인과 자료 확보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특히 현장 점검과 자료 제출 요구가 국내 법인 중심으로 작동하는 만큼 해외법인은 상대적으로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다.
조직 특성은 국내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SBVA는 한국VC협회에서 2020년부터 이사 회사로 활동하고 있으나 부회장사 승격은 거부하고 있다. 협회가 줄곧 승격을 권유했지만 주무 부처가 중기부인 탓에 이 대표가 국내 제도권 중심으로 들어가는 문제에 조심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재 미래에셋벤처투자, 아주아이비투자, LB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SBVA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하우스들이 협회 부회장사로 활동 중이라는 점에서 대비된다.
SBVA의 다음 숙제는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상징적인 자산을 국내 제도권이 납득할 신뢰의 구조로 전환하는 데 있다. 독립 이후 외형은 커졌으나 해외에 뿌리를 둔 지배구조 특성상 국내 활동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모험자본 판이 커질수록 하우스 경쟁력은 인맥이 아니라 성과와 신뢰로 증명된다. 이준표 대표가 어떤 균형점을 세우느냐가 향후 행보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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