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고강도 경량 골판지 상자는 겹겹이 쌓아올려도 무너지지 않는 데다 종이가 덜 들어가 사용감이 가벼워 소비자 입장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품입니다."
지난달 중순 태림포장 시화공장 기술연구소에서 만난 장정원 연구소 팀장은 취재진 앞에서 고강도 경량 상자를 자신 있게 소개했다. 마침 압축강도 실험에서 고강도 경량 상자가 일반 상자보다 50kg 이상 무게를 더 견뎌내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에 장 팀장의 설명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고강도 경량 상자는 태림포장이 지난해 골판지 업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해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세부적으로 두꺼운 5겹 종이 상자를 3겹으로 경량화해 종이 사용량은 기존 대비 20% 줄이고 골판지 강도는 20%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개발됐다. 특히 종이 투입량이 적어 원자재 비용을 최대 15% 낮추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태림포장이 이례적으로 시화공장에 기자들을 불러 모은 의도를 되새겨보니 고강도 경량 상자를 대외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지가 사뭇 엿보였다. 실제로 이번 현장 취재 내내 시화공장 관계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상품성 시연부터 고강도 경량 상자의 개념 설명, 향후 사업 계획 발표 등을 막힘없이 소화해낸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태림포장은 최근 들어 고강도 경량 상자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경영 환경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태림포장 연간 매출액은 7154억원으로 고점을 찍었던 2022년에 비해 9% 감소한 수준을 나타냈다. 같은 기간 300억원을 넘어섰던 영업이익은 골판지 원지가격 등 원재료비 상승 악재가 더해져 적자 전환했다.
이는 골판지 시장이 코로나19 특수가 끝나면서 침체기를 겪게 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태림포장의 경우 골판지 업계 1위를 달리는 기업이다 보니 업황 위축 여파에 크게 노출돼야 했다. 태림포장이 사상 최대 매출을 찍었던 3년 전만 해도 비대면 택배, 배달 수요가 폭발해 골판지 포장재 수요도 뛰는 등 골판지 업계 전반이 호황을 누렸다.
일각에서는 골판지 업계가 도약의 고삐를 조일 기회를 한차례 놓쳤다는 쓴소리도 마다치 않는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내수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채 수출 등 판로 확대에 소홀했던 탓에 지금의 위기를 맞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태림포장 역시 매출 대부분을 국내에서 거둬들이고 있으니 타당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태림포장이 심기일전 끝에 고강도 경량 상자를 내놨지만 회사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기까지 적지 않은 난관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박스는 두껍고 무거울수록 튼튼하다"는 유통업계의 해묵은 인식이 대표적인 걸림돌로 지목된다. 제품 손상은 물론 오배달 등 운송 사고를 철저히 피해야 하는 유통업체들이 섣불리 경량 상자에 신뢰를 보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태림포장은 원가 절감이 핵심 과제인 식품업체들을 중심으로 고강도 경량 상자 판로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오뚜기, 매일유업 등 내노라하는 식품 대기업에 고강도 경량 상자 공급을 개시한 점은 소기의 성과로 꼽힌다.
고강도 경량 상자는 태림포장이 절치부심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판지 업계가 코로나19 국면에서 성장의 '골든타임'을 한차례 놓쳤던 만큼 이제는 자구 노력을 십분 발휘해 분위기 반전을 이뤄내야 할 때다. 고강도 경량 상자가 태림포장을 넘어 골판지 업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해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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