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전한울 기자]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 논의가 장기화되면서 사업 결합 시너지에 대한 회의론도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양 플랫폼의 최근 3년 합산 누적 영업적자만 5000억원을 상회할 만큼 시장 경쟁력은 갈수록 저하되는 것으로 평가되면서다. 지상파 콘텐츠 독점력이 갈수록 약화되는 점도 일부 주주들의 불만 중 하나로 꼽힌다. 양사 콘텐츠 차별화를 이뤄내고 플랫폼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 합병보다 선결돼야 하는 과제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업계에 따르면 티빙의 2대주주인 KT스튜디오가 웨이브 합병 건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관련 논의는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 상당수가 적자를 지속하며 출혈 경쟁을 하는 가운데 티빙과 웨이브 합병으로 강력한 로컬 OTT를 형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상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앞서 웨이브와 티빙은 2023년 12월 합병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세부 조건을 논의해 왔다.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독과점 체제를 깨뜨리기 위해 양사 콘텐츠 경쟁력을 제고하고 시장 점유율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였다.
이 과정서 웨이브 최대주주인 'SK스퀘어'와 티빙 최대주주인 'CJ ENM'이 지난해 말 총 2500억원의 전략적 투자를 통해 웨이브 전환사채를 취득하는 등 합병에 준하는 협력을 단행키도 했다. 이 밖에 SK스퀘어는 최근 이헌 SK스퀘어 포트폴리오관리매니징 디렉터를 웨이브 신임 대표로 선임하고, 티빙 역시 합병에 따른 가입자 확대 의지를 내비치는 등 다각적인 합병 노력을 이어왔다.
문제는 합병 논의가 장기화될수록 양사 경쟁력이 둔화하면서 '합병 회의론'이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양사는 지난해 합산 영업손실 987억원을 기록하며 손실 폭을 전년 대비 55% 가량 줄였지만, 흑자 전환은 여전히 하세월이다. 최근 3년(2022~2024) 두 기업의 합산 영업손실은 5590억원에 달했다. 반등을 위한 전략으로 합병을 추진하고 있으나 각자도생이 장기화되면서 적자 수렁은 한층 깊어지고 있다.

웨이브는 최근 지상파 콘텐츠 지배력도 상실하면서 시장 경쟁력은 한층 떨어진 상태다. 웨이브는 '최대주주' SK스퀘어(40.52%) 아래 MBC·KBS·SBS 등 지상파 3사가 각각 19.83%씩 보유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동안 웨이브는 지상파 3사의 콘텐츠를 우선 공급해 왔지만 최근 일부 방송사가 넷플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콘텐츠 독점력도 사실상 무의미해진 상태다.
이에 티빙의 2대주주인 KT 측은 웨이브·티빙 합병 건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지속 내비치고 있다. 최근 들어 양사 최대 주주들이 적극적인 합병 의지를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정반대 기조인 셈이다. 특히 KT는 웨이브·티빙 합병 움직임과 별개로 자체 인공지능(AI) 결합 등을 통해 독자적인 미디어 사업을 영위해나갈 것이란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채희 KT 미디어부문장(전무)은 지난달 열린 KT그룹 미디어토크서 "웨이브와 티빙은 KT 의사와 무관하게 합병을 전제로 한 길을 걸으며 합병효과에 준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KT가 티빙에 투자한 건 단순 재무적 투자가 아닌 미디어 부문 전반에 걸쳐 사업 시너지를 내기 위한 전략적 투자였다"며 "현재 사업 협력 의지나 가치가 예전에 비해 많이 훼손된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KT가 오랜 기간 유료방송업을 영위해 온 점 등을 고려하면 이해관계가 크게 자리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KT로선 거대 OTT 탄생으로 자체 IPTV 가입자가 감소할 수 있고, 웨이브의 지상파 독점력 상실로 주주가치 역시 악화하는 이중고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지상파들도 최근 광고수입 등이 크게 줄면서 자사 콘텐츠를 여러 플랫폼으로 확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합병 결정이 빠르게 이뤄지지 못해 경영환경과 재무상태에 부담이 계속 가해지고 있다"며 "KT로선 시간이 지날수록 티빙, 웨이브 합병에 따른 수혜가 점점 줄어듦에 따라 긍정적인 신호를 내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합병보다 플랫폼 수익성을 제고하고 콘텐츠 차별화를 이루는 것이 관건이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양사의 얽히고설킨 주주 이해관계를 조율한다는 건 당초 짧은 시간 내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합병 전망에 젖어있기보다 각 플랫폼마다 경쟁력을 빠르게 키워나가야 상황"이라며 "국산 OTT 규모가 커질수록 유료방송 업계가 쪼그라들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하는 만큼 사업, 콘텐츠 등 차별화를 통해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아우르는 성장 촉매제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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