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노연경 기자] 홈플러스가 이번 기업회생 신청은 부도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홈플러스가 회생까지 가기 전에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등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에 의아함을 표하고 있다. 또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사재 출연도 회생 이전에 결정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이달 4일 새벽 기습 회생신청을 했다. 지난달 28일 신용등급 하향이 공시된 이후 약 4일 만에 이뤄진 결정이다. 이 사이에는 주말과 공휴일도 끼어 있었다. 홈플러스 주요 채권단조차 홈플러스의 회생 신청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회생 신청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의혹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홈플러스에게 기업회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통상 기업이 부도 위기에 빠졌을 때 선택지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채권단과의 자율협약, 워크아웃, 기업회생이다. 기업회생은 선택지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은 채권단에 자금경색 상황을 전하고 채무상환을 유예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새로운 담보나 보증을 제공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방식이 워크아웃이다. 워크아웃과 기업회생이 같은 의미로 혼용돼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워크아웃과 기업회생은 적용되는 법부터 채권 동결 범위까지 전부 다르다.

먼저 워크아웃은 특정기업의 기업가치를 회생시키려는 목적에서 해당 기업과 주된 채권자인 금융기관이 서로 협의해서 진행하는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을 말한다. 즉 채권단 주관하에 자율적으로 협상과 조정을 거쳐 회생을 도모한다. 워크아웃이 시작되면 은행대출금의 출자전환, 대출금 상환유예, 이자감면 등과 같은 금융지원이 이뤄진다. 이때 동결되는 채권은 금융채권만 해당하며 상거래채권은 해당하지 않는다. 워크아웃 과정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근거한다.
반면 기업회생은 통합도산법에 따라 법원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공적 구제수단이라는 점에서 사적 구제수단인 워크아웃과 차이가 크다.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면 금융채권은 물론이고 상거래채권까지 모든 채무가 동결된다. 법률에 의한 강제성을 갖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조정이 보다 용이하다.
다만 이번 홈플러스 사태의 경우 중소 협력사나 근로자가 대금이나 임금을 받지 못할 경우 큰 사회적 파장이 예상되는 만큼 법원은 홈플러스가 영업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도록 상거래채권은 동결하지 않은 예외를 뒀다.
홈플러스는 워크아웃을 건너뛰고 회생법원으로 곧바로 향한 이유에 대해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아 자발적 협의가 불가능하다"며 "회생으로 강제력을 가지지 않으면 부도가 날 수 있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는 신용등급 강등으로 당장 도래하는 단기채권을 돌려 막지 못하면서 채권단과의 협의를 진행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홈플러스와 같은 유통사들은 매출에 비례해 꾸준히 카드결제 금액이 발생하기 때문에 통상 3개월 주기로 단기채권을 발행한다. 즉 3개월 단위로 단기채권을 발행하면서 기존 채권을 새로운 채권으로 돌려 막는 방식이다.
영업이익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거나 보유현금이 넉넉하면 단기채권 발행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이미 자금경색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라 여유자금이 없었다. 기업회생 신청 이후 금융채권이 동결됐음에도 이달 13일 기준 홈플러스의 현금잔액은 1600억원에 불과했다.
여기에 신용등급 상등으로 기존 규모의 단기채권 발행이 어려워지자 기업회생 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홈플러스 단기채권 판매잔액은 이달 3일 기준 5949억원에 달한다. 실제 홈플러스도 당장 단기채권을 막지 못할 경우 3개월 내 부도가 날 위험이 있어 회생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홈플러스의 경영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경우 몇 년째 영업적자가 계속되고 있었고 리스부채 증가로 당기순이익도 악화하고 있었다"며 "재무구조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단기채권을 계속해서 발행했다는 것은 위험도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이어 "홈플러스가 은행권 부채를 증권사 대출로 차환한 부분 역시 은행권에서는 이미 홈플러스의 재무구조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이 사재 출연을 결심한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MBK파트너스는 지난 16일 입장문을 통해 "홈플러스 대주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그 일환으로 홈플러스가 소상공인 거래처 결제대금을 마련하는 데 김 회장이 사재를 털어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 시기나 규모에 대해선 정해진 것이 없다.
이달 18일 진행한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 김 회장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참석했다. 대신 이 자리에 참석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겸 홈플러스 공동대표는 사재 출연 시기나 규모를 빨리 정해야 한다는 질타가 계속됐음에도 답변이 곤란하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시장 한 관계자는 "MBK파트너스가 정말 홈플러스를 살릴 의지가 있었다면 사재 출연은 회생 신청 이후가 아닌 이전에 했어야 했다"며 "쿠팡이 10년 가까이 적자를 지속하면서도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던 건 소프트뱅크가 계속해서 자금 지원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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