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규연 기자] "(퇴직연금과 관련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만 머무르던 자금이 자본시장에 안심하고 투자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자산배분형 연금펀드 상품 '디딤펀드'와 관련해 내놓은 일성이다. 디딤펀드를 출시해 퇴직연금 가입자 상당수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자금을 묻어두고 있는 상황을 개선해 보겠다는 다짐이 담겼다.
디딤펀드는 자산배분전략(주식, 채권 등을 대상으로 한 분산투자 및 리밸런싱)을 통해 중장기 수익을 추구하는 연기금형 자산배분펀드 상품이다. 오는 9월 25일에 자산운용사 25곳을 통해 출시될 예정이다. 자산운용사 1곳당 디딤펀드 상품 1개씩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노후 준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퇴직연금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퇴직연금 가입자 상당수는 예‧적금 등의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주요 자금 운용수단으로 보고 있다. 증권이나 펀드 등의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 선호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은 안전자산이지만 연간 수익률은 평균 2~3% 수준으로 물가상승률 등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국민 노후 대책 차원에서 퇴직연금 가입자를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 투자로 유도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 7월 도입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역시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목적으로 시행됐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형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지시하지 않으면 사전에 정한 방식대로 자금을 자동 운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으로 디폴트옵션을 선택한 퇴직연금 가입자의 87%(약 487만명)는 여전히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을 통해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제도 도입 목적과는 거리가 있는 결과다.
이 문제의 해결 수단으로 금융투자협회가 힘을 싣는 상품이 바로 디딤펀드다. 금융투자협회도 "일반 근로자가 양질의 밸런스드펀드(BF)에 쉽게 접근하고 비교 및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업계 공동 브랜드인 디딤펀드를 론칭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밸런스드펀드는 위험자산 비중을 일정 범위로 유지하되 시장 상황이나 자산가치 변동에 따라 자산배분을 조정하는 퇴직연금 펀드를 말한다. 분산투자를 통해 위험을 관리하는 상품인 만큼 수익률을 끌어올리면서도 투자위험을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금융투자협회에서 디딤펀드 출시를 추진하는 것은 의미 있는 행보로 볼 수 있다.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수익률과 안전성을 일정 부분 보장하는 새 선택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려는 뜻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리 좋은 뜻으로 추진되는 일이라 해도 디딤펀드가 실효성을 갖췄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다른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인 TDF(타깃데이트펀드)를 다수 운용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디딤펀드가 출시된다면 당장 TDF와 경쟁을 해야 한다. 즉 디딤펀드가 TDF와 차별화된 강점을 갖춰야 하고 이 사실이 적극 알려져야 퇴직연금 가입자 수요도 늘어난다. 더불어 상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가 TDF뿐 아니라 디딤펀드에도 힘을 싣도록 유도하는 수단도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이런 준비가 철저하게 갖춰졌는지 의문이다. 먼저 자산운용업계 차원에서 디딤펀드가 널리 홍보되고 있는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도 금융투자협회 차원에서 홍보를 더욱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금융투자협회 차원에서 정부 협의 등을 통해 디딤펀드 운용사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도 논의할 수 있다. 개별 자산운용사가 기존에 운용하던 TDF뿐 아니라 디딤펀드에도 힘을 실을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기대수명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퇴직연금 수익률은 금융업계뿐 아니라 국민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사안이 됐다. 금융투자협회가 디딤펀드를 통해 나타내는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 의지가 반가운 이유다. 그 의지가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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