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주명호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금융지주)과 보험업권 자본규제를 손질하며 약 100조원 규모의 추가 자금공급 여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 수치는 실제 대출 증가분이 아닌 자본비율 개선 등을 통해 산출된 잠재적 공급 여력으로, 규제 완화 효과가 금융권 자본비율 산식 전반에 반영된 결과다. 금융당국은 이렇게 확보된 공급 여력을 생산적 금융과 중동 피해기업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6일 이억원 금융위원장 주재로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이 같은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과 삼성생명, 교보생명, 메리츠화재, DB손해보험 등 주요 보험사, 민간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를 통해 은행과 보험권의 자본규제 부담을 완화하고, 위험가중자산(RWA) 조정과 위험계수 합리화를 통해 투자·대출 여력을 확대하는 규제 패키지 성격의 개편이라고 설명했다.
◆구조적 외환포지션 대상 확대…은행권 총 74.5조원 추가 자금 공급
금융당국은 은행권 자본규제 개선을 통해 최대 74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 공급 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개별 조치별 자본비율 개선 효과를 합산한 결과다.
우선 과거 대규모 금융사고 등 재발 가능성이 낮은 손실에 대해 일정 기간(3년 이상) 운영리스크로 반영된 경우, 재발 방지 요건 충족 시 해당 리스크를 산출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금융사고 발생 시 해당 리스크가 10년간 자본비율 산정에 반영돼 은행의 자본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이에 따라 5대 은행지주의 CET1(보통주자본) 비율이 최대 0.26%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금융당국은 추정했다.
또한 시장리스크 산출시 제외되는 구조적 외환포지션 인정 범위를 확대해 해외 장기 지분투자(비연결 자회사)와 해외점포 이익잉여금까지 포함하기로 했다. 이는 환율 변동에 따른 자본비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유럽, 영국, 미국, 홍콩, 호주 등 해외 감독당국은 비거래적 성격인 해외투자에 대해 환율 변동에 따른 자본비율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한도 내에서 구조적 외환포지션으로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특히 해외 진출 목적의 비거래성 투자 자산을 구조적 외환포지션으로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국제 규제 체계와 정합성을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해외점포 이익잉여금의 경우 배당·회수가 제한되며, 당기손익에 따라 이익잉여금 변동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해 구조적 외환포지션 인정 규모를 일정수준으로 제한키로 했다.
이와 함께 신용위험 변별력이 저하된 내부신용평가모형을 재개발할 경우 심사를 신속히 진행해 신용위험 산정 체계 고도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기업 신용위험 변별력을 높여 자본 효율성을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 건전성·수익성 개선 등에 따라 자본비율 상승 가능성도 높아지는 이점이 있다.
◆보험업권, 위험계수 측정 합리화·내부모형 도입 등으로 24.4조원 공급여력 마련
보험업권은 자본규제 합리화를 통해 최대 24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 여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성 투자에 대한 위험계수를 기존 49%에서 20% 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실제 위험경감 효과를 반영하는 정책프로그램 특례를 신설하고, 장기보유(10년 이상) 투자 시 특례(위험계수 20%)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 이와 함께 벤처투자에 대한 위험계수도 35% 수준으로 낮춰 상장주식 대비 부담을 완화한다.
인프라 투자 범위도 확대된다. 위험계수 20%인 인프라 특례가 적용되는 적격 인프라 범위를 신재생에너지, AI 기반시설 등으로 넓히기로 했다.
대출·채권 등 신용위험액 감소를 위해 매칭조정제도도 활성화한다. 현행제도의 경우 엄격한 요건으로 인해 실제 활용 사례가 없었던 만큼, 변동금리 자산에 대해 일정 미스 매칭률(10% 이내) 범위 내에서 매칭조정을 허용키로 했다. 또한 정부의 인프라 대출에 대해 전액보증 뿐만 아니라 일부보증에 대해서도 무위험(위험계수 0)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또한 레버리지펀드와 블라인드펀드의 위험액 산정 방식도 합리화된다. 차입 목적이 유동성 관리이고 만기가 1년 이내로 명시된 경우 레버리지펀드에서 제외하는 식이다. 블라인드펀드 역시 미집행 출자 약정은 출자예정금액 기준으로 위험액을 산정하도록 개선된다.
주택담보대출(LTV 60~80%) 구간의 위험계수는 3.5%에서 4.0%로 상향 조정된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대비 보험업권 기준이 완화돼 있던 점을 고려해 규제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보험부채 할인율 산정 방식도 개선된다. 유동성 프리미엄 산정 시 수익증권 등 금리부 자산을 반영해 할인율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보험부채가 감소하는 효과를 유도한다. 또한 내부모형 도입을 통해 투자 리스크 산정의 정교화도 추진한다.
◆ "100조 여력, 생산적 금융 전환 유도"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로 확보된 약 100조원 규모의 추가 여력이 실제 생산적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관리·점검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앞으로도 규제개선 TF 등을 통해 생산적 금융 추진을 위한 추가 제도 개선 과제를 지속 발굴할 예정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일종의 '정책 추경조치'인 만큼 추가 자금공급 여력이 우리 산업 현장 전반에 확산돼 위기극복과 경제 재도약의 마중물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시장과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금융의 자금 물줄기가 생산적 분야로 흐르도록 제도와 환경을 과감히 바꾸겠다"며 "금융권도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분야로 자금을 공급하는데 적극적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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