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자본규제를 손질하며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을 낮추고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 여력을 확대하는 데 나섰다. 자본 비율을 끌어올려 생산적 금융 가동 여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지만 동시에 주주환원 압박을 받는 은행 금융지주의 현실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16일 이억원 금융위원장 주재로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은행·보험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생산적 분야로의 자금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은행권과 보험업권의 자본 부담 구조를 조정하는 데 있다.
은행권 제도 개선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공통적으로 CET1 비율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RWA 산출 기준을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은행 금융지주가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CET1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하는 상황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우선 운영리스크 손실 인식 기준이 완화된다. 금융당국은 재발 가능성이 낮은 대규모 손실사건에 대해 3년 이상 운영리스크로 인식한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산출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금융사고로 발생한 손실은 자본비율 산정에 최대 10년간 반영되며 RWA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손실 배제를 위해서는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내부통제 개선 등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되고 충분한 보상과 법적 분쟁이 종료되는 등 잔여 법률리스크가 해소된 경우에 한해 감독당국 심사를 거친다. 정량적으로는 해당 손실이 은행 연평균 손실금액의 5% 이상이면서 최소 3년 이상 운영리스크로 반영된 사례여야 하며 정성적으로는 해당 사업의 전면 폐지 또는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이행이 입증돼야 한다.
구조적 외환포지션 인정 범위도 확대된다. 금융당국은 해외 사례를 고려해 비거래 목적의 해외 장기 지분투자와 해외점포 이익잉여금을 시장리스크 산출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해외 진출 목적의 지분투자는 단기 매매가 아닌 장기 투자 성격이 인정될 경우 전액 구조적 외환포지션으로 인정된다. 전략적 제휴나 경영권 참여 등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비거래성 자산으로 보고 시장리스크 산출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다만 단기 자본이득 목적의 투자와 구분하기 위해 해외 진출 목적이 명확해야 하며 각국의 외환·금융 규제 등으로 매각이 제한되는 점도 함께 고려된다.
해외점포 이익잉여금 역시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에 한해 인정된다. 배당이나 본점 송금이 제한되고 현지 사업에 재투자되는 경우에만 구조적 외환포지션으로 포함된다. 배당·회수가 지속될 경우에는 단기 수익 목적 자산으로 판단해 제외된다. 또한 이익잉여금은 당기 손익에 따라 변동성이 발생하는 만큼 자본비율 안정성을 고려해 인정 규모도 일정 수준으로 제한된다.
내부신용평가모형과 관련해서는 변경 승인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한 심사가 이뤄지도록 했다. 내부등급법을 적용하는 은행은 자체 신용평가모형을 통해 위험가중치를 산정하는 만큼 모형의 정확도와 최신성이 자본비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존에는 데이터 검증과 내부통제 점검 등 절차가 복잡해 변경 승인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문제가 있었다.
금융당국은 유사 사례 일괄심사와 핵심 리스크 요인 중심 점검 방식으로 절차를 단순화해 승인 기간을 단축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기업 신용위험을 보다 정교하게 반영하고 위험가중치 산정의 정확도를 높여 RWA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금융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은행권 CET1 비율이 지주별로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운영리스크 완화는 최대 26bp, 구조적 외환포지션 확대는 최대 12bp 수준의 개선 효과가 예상된다. 이에 확보된 자본여력을 기업대출로 전환할 경우 최대 74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조치에 대해 은행권은 우선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발맞추고 배당 및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CET1 비율 관리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RWA 산출 기준 완화로 자본비율 방어와 자금 공급 확대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평가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번 자본규제 합리화 조치는 은행권의 자본여력을 확충해 실물경제로의 자금공급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확보된 여력을 바탕으로 첨단산업·수출기업 등 생산적 분야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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