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황지현 기자]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자금세탁방지법 등의 혐의로 미국 정부로부터 43억달러 한화로 약 5조5000억원에 이르는 벌금을 지불하고 미국 시장에서 철수한다.
바이낸스와 미국 정부의 이 같은 합의가 알려지자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바이낸스의 국내 진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하고 있다.
◆ 불안한 바이낸스…창펑 자오 CEO도 사임
24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와 법무부는 21일(현지시간)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약 5조5000억원에 이르는 벌금을 내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고 공개했다.
5조원이 넘는 벌금은 바이낸스는 미국 정부가 제재하는 국가와 단체의 자금세탁을 도운 혐의때문이다. 바이낸스는 자금세탁 방지 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채 테러단체, 랜섬웨어 가해자, 자금세탁자 등 범죄자의 거래를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하마스의 무장 조직인 알 카삼 여단,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슬람국가(ISIS) 등이 바이낸스를 이용해 자금의 통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바이낸스는 이란, 북한, 시리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등 제재 대상 지역에 있는 사용자와 거래도 중개했다.
이번 합의로 바이낸스 창립자 창펑 자오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그는 자신의 X(구 트위터)에 "바이낸스의 CEO에서 물러났고 이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다만 미국 정부는 바이낸스가 고객 자산을 유용했다거나, 시장 가격 조작에 관여했다고 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에서 제시한 각종 혐의에 대해 일부만이 유효한 주장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 시장 일부에서는 바이낸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은 "바이낸스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라앉고 가상자산 투자자에게는 바이낸스 붕괴로 인한 잠재적 시스템 리스크가 제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 고팍스 "바이낸스와 여전히 파트너"
바이낸스가 자금세탁 관련 혐의를 인정하자 국내 진출에 새 국면을 맞이했다. 지난 2월 바이낸스는 국내 원화 가상자산 거래소인 고팍스 지분을 72.26% 확보하며 국내 진출에 나설 계획이었다. 고팍스는 지난 3월 레온 싱풍 바이낸스 아시아태평양 대표를 고팍스 등기 임원으로 선임하고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사업자(VASP) 변경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국내 금융당국이 VASP를 수리하지 않으며 국내 사업 진출이 지연되고 있다.
고팍스가 일정한 기준을 맞춰 신고서를 제출했지만 FIU는 구체적인 사유 없이 승인을 미뤄왔다. 이에 고파이(고팍스의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투자자들은 지난 6월 말 금융당국이 고팍스 변경신고를 부당하게 지연하고 있다며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박정훈 전 FIU 원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FIU가 VASP 신고를 수리해야 바이낸스가 355억원의 고파이 미지급액을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팍스 관계자는 "벌금과 관련된 내용은 외신 기사를 통해 해당 사실을 알게 됐다. 이와는 상관없이 바이낸스와 여전히 사업적·기술적인 파트너 관계"라고 말했다.
◆ 바이낸스 국내 진출 '청신호 vs 적신호'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바이낸스의 국내 진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먼저 바이낸스 승인을 향한 걸림돌이 '사법리스크'라면 국내 사업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윤승식 타이거리서치 애널리스트는 "바이낸스가 고팍스를 통해서 진출하는 데 고려되는 최대주주의 적격성에 미국 사법 리스크가 일부 해소되면서 국내 규제 당국도 사업자 변경을 고려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FIU가 고팍스 인수 승인을 주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혜원 쟁글 애널리스트는 "그간 금융당국이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에 따른 가상장산사업자 변경 신고 수리를 미뤄왔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것"이라며 "바이낸스에 대한 우려 요인을 사법 리스크로 생각했다면 리스크가 해소됐기 때문에 국내 진출에 청신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낸스 자본의 국내 유입 우려 등 기타 이유 때문이라면 이번 사태가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팍스 인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국민의힘 가상자산특별위원회 위원)는 "아직 창펑 자오 최고경영자의 형사처벌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소송이 남아있기 때문에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긴 어렵다"며 "이번에 바이낸스가 자금세탁의 이유로 벌금을 내는 것은 오히려 FIU가 우려하고 있었던 사법적 리스크가 인정된 격이므로 단호하게 고팍스 인수에 안 된다고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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