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관훈 차장] 얼마 전 저축은행 업계는 오픈채팅방과 커뮤니티 등을 통해 급속히 확산된 루머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로 대형 저축은행 2곳에서 1조원대 결손이 발생해 계좌가 지급정지 될 예정이니 예금 잔액을 모두 인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일부 예금자들은 이미 인출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확인결과 관련 메시지는 사실 무근임이 드러났지만 해당 저축은행은 물론 금융당국과 저축은행중앙회까지 나서 사태 진화를 위해 진땀을 빼야했다.

올 들어 금융권을 흔든 가짜뉴스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달 말에는 한 인터넷은행이 위기설에 휩싸였다. 연 3.5% 금리를 가입과 동시에 제공하는 '선이자 예금 상품'을 출시하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해당 은행의 유동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해명한 후에야 비로소 위기설은 가라앉았다.

이번 일들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심리에 따라 변동성이 커지는 금융·자본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여기에 고도화된 디지털 금융 시스템까지 맞물리면서 시장이 한 순간에 붕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 최대 상업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은 시장의 불안한 심리와 디지털 금융 기술이 빚은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은행이 망한 직접적 원인은 스마트폰이다. 과거 은행이 뱅크런으로 파산하려면 몇 주에서 몇 달이 소요됐다. 말 그대로 예금자들이 은행으로 달려가 창구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해 대규모 예금 인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SVB는 자금위기가 알려진 지 이틀 만에 파산했다. SVB 예금자들은 소문이 돌자 온라인뱅킹으로 순식간에 예금을 인출해 버렸고, 은행은 짧은 시간 내에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됐다. 이른바 '디지털 뱅크런'이다.

금융 디지털화로 편의성과 효율성은 높아진 반면, 쉽고 빠른 자금의 이동으로 유동성 리스크는 이전보다 커졌다. 높은 수준의 디지털뱅킹 활성화가 오히려 블랙스완형(예측 불가능한 사건)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한국에서 SVB 사태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보다 예금 인출 속도가 '100배는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뱅크런을 막으려면 불안한 금융 심리에 대응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우선 23년째 5000만원으로 묶여 있는 예금보호 한도를 높여 예금 인출 유인을 줄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예금보호 한도는 미국 25만달러(3억3375만원), 일본 1000만엔(9963만원), 캐나다 10만 캐나다달러(9845만원)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가짜 뉴스와 루머 확산을 막기 위한 실시간 모니터링과 신속 대응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금융업계에선 이번 저축은행 루머 유포자를 본보기 삼아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은 총재의 주문대로 징벌 수준을 현행 '5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1500만원'에서 대폭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도 있겠다.

디지털 뱅크런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해당 은행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시장 전체로 파장이 미칠 수 있다. 금융권이 가짜 뉴스와 루머에 긴장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모두가 힘든 시기다. 경제위기 신호가 곳곳에서 나오고 금융불안지수는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요즘이다. 언제든 가짜뉴스는 나올 수 있다. 근거 없는 헛소문이 금융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