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임초롱 기자] 원·달러 환율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정부와 외환당국이 시장 안정에 총력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최근 환율 급등을 경제 펀더멘털 악화보다 역외시장을 중심으로 한 수급 불균형과 쏠림 현상의 영향으로 판단하고, NDF(역외차액결제선물환) 시장 점검과 시장 교란 행위 단속 등 대응 수위를 한층 높였다.
정부와 관계기관은 8일 오후 신진창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주재로 시중은행 및 외은지점과 '외환시장 관련 은행권 간담회'를 열고 최근 외환시장 동향과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최근 국내 증시 상승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 조정과 차익 실현 움직임이 나타나는 가운데 중동 지역 긴장 고조와 미국 통화정책 불확실성 등이 겹치면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간담회에서는 역외 NDF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쏠림 현상이 국내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에 따라 향후 역외 NDF 거래를 국내 외환시장으로 흡수하기 위한 방안도 논의했다. 아울러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검사를 통해 원화 약세 국면에 편승한 투기성 거래나 시장 교란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점검하고 결과에 따라 엄정 조치하기로 했다. 은행권에는 외환시장 행동규범 준수와 내부통제 강화를 당부했다.
이날 외환시장은 극심한 변동성을 나타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6.1원 오른 1555.2원에 개장했다. 지난 5일 야간거래에서 1560원대를 넘어선 데 이은 것으로, 시가 기준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4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후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이 이뤄지자 환율은 장 후반 하락 전환하며 전 거래일보다 4.1원 내린 1535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장중에 이뤄진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은 NDF 시장을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외환당국은 윤경수 한국은행 국제국장과 이형렬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명의의 공동 메시지를 통해 "최근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수급요인 이외에도 NDF 등 일부 투기적 외환거래가 변동성을 증대시킨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변동성과 일방향의 쏠림을 결코 용인하지 않고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상적으로 외환당국은 환율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때마다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수준의 원론적 메시지를 내놓는 데 그쳤지만, 이번에는 '투기적 거래'를 겨냥했다. 이와 함께 투기 거래에 대한 강력 대응 방침까지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이는 최근 환율 상승의 배경을 국내 경제 펀더멘털 악화보다는 단기 수급 불균형과 역외 시장 중심의 쏠림 현상에서 찾고 있다는 당국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 역시 환율 급등에 대해 "일시적 현상"이라는 취지로 언급하며 시장 안정에 무게를 실었다. 환율 상승을 경제 체력 악화의 신호로 해석하기보다 시장 불안 심리와 수급 요인에 따른 단기 변동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과 외환당국의 시각은 대체로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이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과도한 우려 확산을 차단하는 데 집중했다면 외환당국은 투기적 거래와 일방향 베팅에 경고를 보내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당국의 시장 안정 조치와 별개로 한국은행의 추가 대응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정부와 관계기관은 시장 변동성이 재차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 24시간 체제로 시장 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환율 급등세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측면에서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씨티는 이날 '자본 유출 압력, 원화 약세, 그리고 한국은행의 바른 금리인상' 보고서를 통해 7월 이후 연속적인 금리 인상 또는 6월 임시 금융통화위원회 개최를 통한 조기 인상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대응은 지난 4월 취임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체제의 외환시장 대응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신 총재는 취임 이후 환율 수준 자체보다 변동성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날 역시 외환당국은 환율 레벨보다 시장 기능을 왜곡하는 투기적 거래와 일방향 쏠림을 문제 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술적으로 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 매도에 따른 외환시장 위험 회피 심리가 지속될 경우 2009년 3월에 기록했던 고점 1580원 내외에서 저항선이 생길 수 있다"면서도 "이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로, 당국의 적극적인 구두개입과 시장 안정 조치가 이어질 경우 추가 상승 압력은 상당 부분 제어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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