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배터리 업계가 현행 투자세액공제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지적하며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만들수록 지원받는 미국·일본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투자 금액 기준 공제에 머물러 있어, 수년째 적자인 배터리 기업엔 제도 혜택이 사실상 공백 상태라는 지적이다.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전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내생산촉진세제 국회 토론회'에서 업계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나온 문제의식은 지난해 9월 열린 '글로벌 배터리 시장 변화와 K배터리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회 토론회'와 사실상 동일했다. 당시 패널로 참가했던 배터리 업계 3사 관계자들은 "수년 째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논의는 제자리걸음이고 그 사이 한국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점유율은 뒷걸음쳤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수년째 반복되는 이 논의의 핵심은 단순하다. 현행 제도가 배터리 산업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자세액공제는 투자 금액의 일정 비율을 법인세에서 차감하는 방식이다. 법인세를 낼 이익이 없으면 공제분은 이월될 뿐 즉시 현금 효과가 없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3사가 수년째 적자이거나 겨우 흑자를 내는 상황에서 이월공제는 장부에만 쌓이는 숫자인 셈이다.
정작 문제는 이를 풀 열쇠를 쥔 기재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해 토론회에서 김우섭 LG에너지솔루션 전무는 기재부를 향해 "동일한 투자세액공제 제도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지 못하는 게 배터리인데, 이게 특혜가 아니라 오히려 차별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 전무의 "고민은 그만하고 결정을 내려달라"는 발언은 올해도 유효하다.
기재부는 직접환급제·제3자 양도 허용 요구에 일관되게 세수 감소 우려를 내세워 왔다. 업계 요구는 직접환급에서 제3자 양도로, 다시 세액공제분의 크레딧 활용으로 수위를 낮춰가며 절충안을 모색했지만 기재부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2023년 첫 아젠다 제시 때와 지금의 답변이 사실상 같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경쟁국과의 격차는 제도 설계 차원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IRA 45X 조항을 통해 배터리 셀 생산량에 연동해 세액공제를 지급하고, 적자 기업도 직접환급(Direct Pay) 또는 제3자 양도로 즉시 현금화할 수 있다. 일본도 지난해 '전략분야 국내생산촉진세제'를 도입해 반도체·전기차·그린산업 전반에 생산 기반 유지 지원을 제도화했다. 두 나라 모두 만들수록 지원받는 구조다.
중국의 경우 방식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정부 보조금과 원재료 공급망 장악으로 가격 주도권을 쥔 중국은 한국 배터리 업계의 글로벌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해 왔다. 일관된 국가 전략과 신속한 의사결정, 이른바 '팀 차이나 플러스 스피드'다. 반면 한국의 배터리 정책은 부처별·기금별로 분산돼 종합적 방향성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안정혜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EU의 FSR(외국보조금규제), 미국의 IRA 등 핵심 정책이 한국 산업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공급망 안정화,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시스템 구축, R&D 투자 확대까지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터리 업계가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생산량·생산금액에 연동된 국내생산촉진세제 신설, 적자 기업도 즉시 수혜 가능한 직접환급제 도입, 세액공제분의 제3자 양도 허용이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인 세수 감소 우려는 이해하지만, 배터리 산업의 성장 사이클이 본격화되면 지원 세수는 빠르게 회수될 것"이라며 "지금 필요한 건 재정 논리가 아니라 중장기 산업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생산촉진세제에 직접환급과 제3자 양도까지 패키지로 도입해야 생산 현장에서 실제로 체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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