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롯데케미칼이 석유화학 구조개편 1호 사업재편 승인을 받은 가운데, '스페셜티' 사업 구조 전환에 관심이 쏠린다.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기능성 소재 비중을 6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인데, 중국의 기술 습득 속도가 빠른 만큼 전환이 완성될 시점에 또 다른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중국이 빠르게 따라오고 있어 2030년 시점에 지금의 스페셜티가 다시 범용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급 과잉 가능성에도 기술력을 올려 격차를 벌리는 방법이 현재로선 유일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재편의 출발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롯데케미칼이 지난 4년 연속 적자에 빠진 근본 원인은 중국의 범용 석화 설비 대규모 증설이었다. 중국이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 시장을 잠식하면서 국내 범용 제품의 수익성이 무너졌고, 그 결과가 구조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문제는 롯데케미칼이 다음 목적지로 설정한 스페셜티 시장도 같은 경로를 밟을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범용 제품 자급화를 마친 뒤 고부가 소재 분야로 투자를 옮기고 있다.
실제로 한국신용평가는 동북아와 유럽에서 노후·저효율 설비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이를 웃도는 규모의 중국 중심 신규 증설이 2026~2028년 사이 예정돼 있어 유의미한 수급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신평은 "에틸렌 등 주요 제품 증설 스케줄 감안할 때 2028년 이후에나 점진적인 공급부담 완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셜티 전환이 완성되는 2030년에도 중국발 공급 압력이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롯데케미칼이 지금 움직이는 것은 더 기다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4년 연속 적자로 누적 손실이 3조원에 근접한 상황에서, 재편을 미룰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롯데케미칼은 충남 대산 사업장을 물적분할한 뒤 분할신설회사를 HD현대케미칼에 흡수합병시키는 방식으로 재편한다. 대산 공장을 HD현대와 절반씩 나누고 남은 역량을 고기능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이차전지 소재에 집중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합병 구조의 핵심은 NCC 설비 감축이다. 사업재편 기간 3년 동안 롯데케미칼 대산 NCC 110만t 규모 가동을 중단한다. 현재 대산에서 롯데케미칼은 에틸렌 110만t, HD현대케미칼은 85만t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롯데케미칼 설비를 멈추고 남은 설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양사는 통합 신설법인에 각각 6000억원씩 총 1조2000억원을 출자하며, 오는 6월 계약 체결 후 9월 합병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HD현대오일뱅크의 정유 원료 수급 경쟁력과 롯데케미칼의 공정 기술을 결합한 수직계열화도 기대 효과 중 하나다. 원료를 더 싸게 조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범용 제품의 원가 하한선을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NICE신용평가는 대산 합병만으로도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적자 경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통합 신설법인의 사업재편을 뒷받침하기 위해 총 2조1000억원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가동한다. 2028년까지 약 7조9000억원 규모의 협약채무 상환도 유예되며, 기업 분할·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취득세와 등록면허세는 최대 100% 감면이다. 정부로서는 대산 1호를 여수·울산 후속 구조조정의 기폭제로 삼겠다는 계산이다.
롯데케미칼은 대산 합병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수 재편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한화솔루션·DL케미칼·여천NCC와 중복 설비 통합·조정을 위한 사업재편안을 여수산단에 제출했고, 올해 3월 구체적 계획안을 추가 제출했다. 여수 롯데케미칼 NCC는 123만t 규모로 대산(110만t)보다 크다.
여수 재편이 대산과 겹칠 경우 재무 부담은 가중될 수 있다. 롯데케미칼은 대산 합병을 위해 6000억원을 출자해야 하는데, 2025년 연결 기준 영업손실 9436억원을 기록하며 4년 연속 적자를 이어온 터라 자금 여력이 넉넉하지 않다.
재무 부담 가중 여부를 묻는 질문에 롯데케미칼 측은 "재편 자체가 적자를 줄이기 위한 것인 만큼 자금 부담이 더 커지는 방향은 아니"라면서도 구체적인 조달 계획에 대해서는 "확정된 내용이 없다"고 답했다.
정부 지원과 합병안에 따라 NCC를 멈추고 원가 구조를 바꾸는 것은 당장의 출혈을 줄이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이 모든 조치의 효과는 결국 하나의 조건에 달려 있다. 롯데케미칼이 스페셜티 영역에서 중국보다 빠르게 기술 격차를 벌릴 수 있느냐다. 지원과 합병이 시간을 버는 수단이라면, 그 시간 안에 무엇을 만들어내느냐가 진짜 승부처다.
업계에서는 이번 재편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범용으로는 이미 중국을 이길 수 없고, 스페셜티로 가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그 스페셜티 시장에서도 중국이 언제 치고 올라올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불안 요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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