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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조 국부펀드와 벤컴회 존재감
딜사이트 김규희 차장
2026.04.08 08:25:13
60인 VC 수장 결집한 실세 사조직…폐쇄적 네트워크 넘는 투명한 리더십 과제
이 기사는 2026년 04월 07일 08시 3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김규희 차장] 1940년대 미국 외교 정책을 주도했던 '현자들(The Wise Men)'은 월스트리트의 변호사와 투자은행가들이 주축이 된 엘리트 집단이었다. 이들은 정식 관료 시스템 밖에서 사적인 신뢰와 유대감을 바탕으로 마셜 플랜과 냉전 봉쇄 정책의 기틀을 닦았다. 이들의 사적인 합의는 곧 국가의 전략이 되었고 세계의 질서를 재편했다. 공식 기구보다 강력한 사적 결사체 이른바 그림자 내각은 때로 공적 시스템의 빈틈을 메우는 실질적인 힘으로 작동하지만 동시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현재 대한민국 벤처투자 생태계에서 이와 유사한 위상을 점한 조직이 있다. 약 60명의 벤처캐피탈(VC) 수장들이 결집한 사조직 '벤컴회'다. 벤컴회는 이제 단순한 소모임을 넘어섰다. 2024년 12월 홍충희 지엔텍벤처투자 대표를 중심으로 신임 회장단이 출범한 이후 업계 내 영향력은 더욱 비대해졌다. 벤처캐피탈협회가 업계의 얼굴이라면 벤컴회는 그 얼굴의 표정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근육'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들의 위상은 벤처캐피탈협회장 선거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가 당락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면서 이들은 명실상부한 '킹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협회 부회장단 상당수가 이 모임 회원들로 채워지는 현상은 벤컴회의 영향력이 얼마나 업계에 깊숙이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제는 이 그림자 내각이 구축한 폐쇄적인 생태계다. 미국 외교의 현자들이 사적인 합의로 공적 시스템을 압도했듯 벤컴회 역시 실세를 자처하며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카르텔화된 조직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심화시키고 유망한 스타트업 발굴보다 익숙한 네트워크 안에서 자금을 회전시키는 폐단을 낳을 우려가 있다. 실력보다 인맥이 우선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신진 VC나 중소형 운용사들이 공정한 경쟁을 펼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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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재명정부가 인공지능(AI)과 딥테크 산업 육성을 위해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결성하는 시점이기에 벤컴회의 존재감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모태펀드 예산으로 2조1000억원을 책정한 데 이어 대규모 정책 자금을 공급하는 상황이다. 국가적 자산 관리의 공정성이 강조되는 시기에 사적 결합체의 인적 지배력이 비대해지는 것은 시장에 왜곡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벤컴회가 보유한 응집력은 한국 벤처 생태계의 귀한 자산이다. 시장은 이들이 단순한 친목을 넘어 과거 미국을 일으킨 현자들처럼 혁신의 길잡이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그 기대에 부응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4월 중순 공개될 실적 공시에서 사적 유대를 압도하는 운용 성과를 입증하는 것이다. 150조원 국부가 투입되는 엄중한 시기에 시장의 지지를 받는 진정한 리더십은 필드 위 호형호제가 아닌 차가운 수치에서 시작된다. 권위에 걸맞은 품격을 스스로 증명할 때 시장의 응원은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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