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최근 한화와 LIG넥스원 등 방산 업계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수십조원 규모의 중동 무기 시장 선점이 핵심이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최근 중동 국가들이 기체부터 무장까지 일괄 도입하는 '턴키(Turn-key)' 방식을 선호하면서, 플랫폼(KAI)을 보유한 쪽이 향후 글로벌 방산 패권을 쥐게 된다는 분석이다.
한화는 이재명 정부와 코드를 맞추면서 KAI 인수를 통해 방산 '초격차'와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승계에 힘을 싣겠다는 계획이다. LIG넥스원도 한화가 KAI를 인수할 경우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어 인수전 참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화그룹이 체계종합 기능까지 흡수할 경우, 향후 LIG넥스원의 역할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주요국은 최근 한국산 유도무기 '천궁-II'를 각각 32억 달러(약 4조2000억원)와 35억 달러(약 4조6000억원) 규모로 도입하며 큰 손으로 부상했다. 특히 사우디는 '비전 2030'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국방비의 50% 이상을 자국 내에서 지출하는 방산 현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 무기 구매를 넘어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 유지보수(MRO)를 포함한 '패키지형 플랫폼'을 요구하는 추세다. 플랫폼(기체)을 보유하지 못하면 무장(유도탄) 수출마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시장 변화 속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등 한화 방산 계열사들이 최근 KAI 지분 4.99%를 전격 매입한 것은 '김동관표 육해공 통합 모델' 완성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엔진과 지상 무기(한화에어로), 해상(한화오션)에 이어 기체(KAI)까지 확보해야만 중동 시장에서 압도적인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가 지향하는 '수직계열화' 모델은 사우디아라비아(SAMI)나 UAE(EDGE) 등 중동 국가들의 턴키 요구에 최적화된 전략이다. 기체부터 무장, 운영 유지보수(MRO)를 단일 기업이 패키지로 묶어 제공할 경우 관리 효율이 높고 운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플랫폼과 시스템 간의 유기적 최적화를 통해 무기 체계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한화 모델의 핵심 경쟁력이다.
정치·지리적 명분도 한화에 힘을 실어준다. 시장에서는 현 정부의 '방산 MRO 국산화'와 '민간 주도 우주 개발' 기조가 한화의 인수 명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한화오션(거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창원), 그리고 KAI(사천)는 모두 경상남도에 밀집해 있다. 사천의 KAI까지 한화가 맡게 되면 경남 일대는 거대한 '한화 방산 메가 클러스터'가 된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 균형 발전'과 '방산 수출 거점화' 정책에 부합하는 시나리오다.
다만 지난해 유상증자로 홍역을 치렀던 한화 입장에서 수조원대 인수 자금을 시장의 저항 없이 어떻게 조달할지는 여전한 과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인수 당시 특혜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경영 정상화'와 '수출 확대'라는 정부 목표를 명분으로 돌파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한화의 공세 속에서도 시장이 LIG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보여주는 '개방형 연합'이라는 가치 때문이다. 중동 국가들은 과거 독일이 사우디에 대한 유로파이터 수출 승인을 거부하거나, 미국의 수출 승인(EL) 문제로 부품 공급이 중단되어 전력 공백을 겪었던 트라우마가 깊다.
이 때문에 특정 거대 기업에 모든 공급망을 종속시키는 대신, 전문 장비 기업들이 협력하는 개방 플랫폼을 통해 안보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LIG-KAI 연합 모델은 기체 제조사가 특정 무장에 귀속되지 않아, 구매국이 원하는 미국제(AMRAAM), 유럽제(Meteor), 국산(천궁) 등 다양한 무장 조합을 통합하는 데 훨씬 유연하다. 그러나 한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자금력은 LIG가 실질적 인수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다.
최근 HD현대중공업 역시 방산 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 KAI를 둘러싼 경쟁은 방위 산업 내 주도권 문제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KAI를 누가 확보하느냐에 따라 향후 수출 경쟁력과 사업 구조가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방산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수전은 단순한 M&A를 넘어 대한민국 방산 지형도를 바꾸는 결정타가 될 것"이라며 "정부의 매각 의지와 기업들의 유상증자 등 자금 조달 능력이 실질적인 판세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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