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LG전자가 생활가전을 중심으로 사업 경쟁력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중국 가전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며 프리미엄 시장까지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류재철 LG전자 사장은 프리미엄 시장 방어와 함께 글로벌 사우스 공략, 구독 기반 서비스 확대 등 사업 구조 다변화를 통해 중국 업체의 굴기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생활가전 사업 경쟁력 회복에 힘을 쏟고 있다. 생활가전이 LG전자의 본원적 경쟁력이라는 판단에서다. 류 사장은 지난해 12월 취임 후 첫 전사 경영 전략 회의를 주재하며 가전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중국 가전 업체들의 빠른 추격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메이디, 하이얼 등 중국 업체들은 한국 기업들이 주도해 온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도 진입하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과거 중저가 제품을 기반으로 시장을 확장한 뒤 프리미엄 시장으로 진출해 수익성을 높였던 전략을 중국 업체들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기계전기제품수출입상회(CCCME)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의 가전제품 수출액은 1286억달러(188조원)로 집계됐다. 지역별 증가율은 남미가 33.1%로 가장 높았으며 동남아시아(19.9%), 중동(16.6%), 유럽(15.5%)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현지 기업 브랜드를 인수해 시장에 진입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신뢰도와 브랜드 장벽을 우회하고 있다. 하이얼은 지난 2016년 미국 GE의 가전 부문을 인수한 이후 미국 시장 점유율을 17%까지 끌어올렸다. 유럽 시장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로 한국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TV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추격은 거세다. 지난해 11월 기준 글로벌 TV 시장 출하량 점유율에서 LG전자는 9%를 기록했다. 반면 TCL은 16%, 하이센스는 10%로 LG전자를 앞지른 상태다. 매출 기준으로는 LG전자가 여전히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출하량 기준 물량 공세를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TCL과 하이센스는 기존 저가 제품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미니 발광다이오드(LED) 등 프리미엄 TV 출하량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LG전자와 삼성전자가 강점을 보여온 프리미엄 TV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존재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류 사장은 새로운 시장인 글로벌 사우스 공략에 속도를 낸다는 전략이다. 인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현지 생산과 유통망을 확대해 성장 기반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LG전자에 따르면 인도·사우디아라비아·브라질 매출은 6조2000억원으로 2년 전보다 20% 증가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인구 증가와 젊은 소비층 확대 등 신흥시장 특유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류 사장은 지난해 연말 취임 후 처음으로 발표한 내부 구성원 대상 메시지를 통해 잠재력이 높은 시장의 성장을 극대화해 중장기 성장의 발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북미·유럽 등 프리미엄 시장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보다 균형 있게 조정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글로벌 사우스 시장에서는 단기적인 사업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LG전자 측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LG전자는 이와 함께 가전사업의 수익 구조 다변화에도 힘을 싣고 있다. 가전 구독 사업을 통해 제품 판매 이후에도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TV 사업에서는 자체 플랫폼인 WebOS를 기반으로 광고·콘텐츠 등 플랫폼 수익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B2B 사업 매출은 24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 증가했다.
B2B 사업에서는 건설사와 협력해 설계 단계부터 가전을 포함하는 빌트인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는 북미에서 'SKS'라는 이름의 프리미엄 빌트인 주방 가전 브랜드로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빌트인 가전은 집 안에 붙박이로 설치하는 가전을 뜻하는데, 건물을 지을 때부터 건설 업체와 계약을 맺는 사업이다. 프리미엄 제품 비중이 높아 수익성을 높이는 동시에 건설사와의 협력을 통한 안정적인 수요 확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만큼 가전업계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꼽힌다. LG전자는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B2B 가전 상위 3개 업체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업은 단순 제품 판매가 아니라 서비스와 플랫폼을 결합한 구조라는 점에서 중국 업체들이 단기간에 따라오기 쉽지 않은 영역으로 평가된다. 가전 구독은 설치·관리 등 장기 서비스 인프라가 필요하며 TV 플랫폼 사업 역시 콘텐츠 파트너십과 이용자 기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빌트인 사업 또한 건설사와의 협력과 브랜드 신뢰도가 중요한 만큼 중국 업체들이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다만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을지를 두고 업계의 시선이 엇갈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확장이 가장 큰 리스크"라며 "류 사장으로선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맞서 가격 경쟁력으로 글로벌 사우스 시장을 키우는 동시에 프리미엄 가전, B2B 전략을 유지하며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법에 대한 고심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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