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HMM 부산 이전을 놓고 노조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공적 자금 투입에 따른 책임론이 부상하면서 부산 이전 명분을 방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과거 파산 위기에 몰린 HMM이 약 7조원 규모의 국민 혈세 수혈에 힘입어 회생한 만큼, 공적 책임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논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특히 HMM은 외형만 민간 선사일 뿐 정부 지분이 압도적인 상황이어서 실질적으로 이전을 저지할 동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 HMM 노조, 본사 이전 '결사 반대'…파업 땐 경영진 배임 논란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HMM 노조는 정부와 경영진이 노사 합의 없이 본사 이전을 강행할 경우 총파업은 물론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한다면 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HMM 본사 이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HMM 본사 이전은 이 대통령이 핵심 국정 과제로 제시한 '지역 균형 발전'의 역점 사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부산을 해양수도로 육성하기 위해 '북극항로' 개척에 적지 않은 공을 들이고 있다. 부산항을 북극항로의 동북아 기점 항만으로 육성하게 되면 기존 수에즈 운하 항로 대비 운송 거리를 약 30%, 시간을 10일 이상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적 선사인 HMM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본사가 부산에 위치해야만 해사전문법원과 해양수산부 내 북극항로추진본부 등 유관 기관과 실시간으로 협업하며 북극해 항해 전문성을 내재화할 수 있어서다.
HMM 노조가 이전을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경영 효율성 저하와 인력 유출이다. 전통적으로 해운 고객사가 서울에 몰려 있어 영업망 훼손이 우려되는 데다, 부산 지역 연고가 없는 직원들이 대규모 이탈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해운사가 선박금융을 일으키기 위해 국책은행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는데, 본점 이전에 따른 거리 증가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당장 다음 달 10일부터 시행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으로 HMM 노조의 파업 부담이 축소된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해당 법은 파업 관련 손해배상 청구 요건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회사는 파업으로 발생한 금전적 손실을 근로자에게 따지기 어려워지게 된다. HMM 노조가 실제로 파업에 돌입하면 사측의 경영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HMM 본사 이전에서 기인한 파업으로 실적 악화가 현실화될 경우 경영진에 대한 배임 논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공공의 이익'에 쏠린 눈…정부 지분 만으로 본점 이전 가능
하지만 HMM 노조 측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글로벌 해운 예약과 화물 관리의 대부분이 비대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는 만큼 물리적 거리가 영업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입출항과 하역이 이뤄지는 부산이 물류 효율성 측면에서는 더욱 유리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부산의 경우 한국해양대와 부경대 등 해운 항만 분야에 특화된 인재 풀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력 확보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점도 있다. 아울러 산업은행(산은) 해양산업금융본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 본사 등 선박 금융 조달을 위한 실질적 허브가 부산 국제금융센터에 구축돼 있다.
일각에서는 HMM의 경영 편의성보다는 공적 책임 논리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HMM이 국민의 희생으로 정상화된 만큼 수익성이 아닌, 국가 발전이라는 공익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서 HMM은 2016년 유동성 위기로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산은과 해진공 등은 HMM으로 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추산된다.
산은과 해진공은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HMM의 주가가 우상향 흐름을 보이자 기 보유 중이던 영구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주가보다 낮은 가격에 CB를 전환하지 않는 것이 배임 논란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산업은행과 해진공의 HMM 지분율은 각각 35.42%, 35.08% 총 70.5%로 나타났다.
HMM이 서울 여의도인 본점 소재지를 부산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 출석주주 3분의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1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HMM의 발행주식총수는 9억4323만7970주이며, 3억1409만8244주의 동의만 받으면 된다. 단순 계산으로 산은과 해진공 두 기관이 자력으로 특별결의 안건을 가결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기업으로서의 공적 책무와 이미 구축된 부산의 해양 인프라를 외면하면 '수도권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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