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국내 기업들이 미국 상호관세에 대한 미 대법원의 위법 판결에 대해 긴장 속에서 동향을 관찰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 직후 10% 글로벌 관세 부과를 곧바로 들고 나오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자동차, 철강 등 이미 고율의 관세를 적용받고 있는 우리나라 주력 수출 상품은 품목별 관세를 적용받기 때문에 당장 특별한 영향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다양한 법안들을 근거로 하는 여러 종류의 추가 관세를 매길 우려가 있어 긴밀히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 등 재계는 이번 판결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변화와 관련 영향 등을 긴장 속에 면밀히 검토 중이다. 지난해 한미 협상 타결을 통해 가까스로 진정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인해 관세 리스크가 재점화 될 우려가 있어 대책 마련에 한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연방 대법원이 자신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전 세계 각국에 부과한 상호 관세가 위법이라고 판단하자 분노했다. 이에 해외 국가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역법 122조'를 꺼내들면서 전세계 국가의 수입품을 대상으로 10% 새 관세를 부여했다. 무역법 122조는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나 달러 가치 하락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이 최대 15%의 긴급 관세를 150일 동안 부여할 수 있도록 한다. 1974년 닉슨 대통령 재임 당시 제정된 이래로 트럼프가 처음으로 발동시켰다.
새 관세는 미국 동부 시각 기준 오는 24일 오전 12시 1분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관련 문서에 따르면 소고기, 토마토, 오렌지와 같은 일부 농산물과 미국에서 생산이 어려운 일부 중요 광물 및 금속과 비료, 의약품, 일부 전자 제품 및 승용차 등 품목은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당장 우리나라의 주요 대미 수출품은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미 대법원의 이번 판결과 관련이 크지 않다. 반도체, 철강, 자동차, 석유제품, 의약품이 제외됐다. 철강과 자동차는 상호관세가 아닌 품목 관세를 적용받기 때문에 기존 관세율이 유지된다.
현재 철강의 품목별 관세는 50%이고,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의 관세율은 15%다. 자동차 업계는 상호관세 판결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을 이유로 예고한 25% 관세 복구를 더 우려하는 상황이다. 반도체와 의약품은 무관세가 유지된다. 반도체의 경우 품목 관세율 100%가 언급된 적이 있지만, 한미 관세 협상으로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오히려 국제 사회에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기업들과 정부는 정확한 상황 파악이 급선무라는 인식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 입법 지연 등 이유로 한국에 대한 관세율 인상을 거론한 바 있어 정책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무역법을 활용할 수 있는 만큼, 관세 정책의 방향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법리적으로는 관세 환급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감안할 때 자동 환급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요 기업들은 사태 파악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자동차 업계는 당장의 특별한 변화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자 및 부품은 상호관세 부과 대상이 아니고, 별도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품목관세가 부과되고 있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에 의한 직접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철강업계도 큰 동요는 없지만 정책 변동성이 커진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 철강 수출은 대미 관세 부담에 따라 위축됐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한국의 철강 수출량은 218만9490톤(t)으로 지난해 같은 달(246만8922t)과 비교해 11.3% 감소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추후 상황을 지속해서 점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선 업계와 반도체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그램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가동을 앞둔 상황에서 불똥이 튈까 우려하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 있고 추가적인 변수가 나올 수 있어 차분히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업계는 아직 품목관세를 정하지 않는 상황이라 사태 전개를 다각도로 분석 중이다. 미국이 최근 대만 TSMC 등을 압박하는 등 반도체 산업을 경제 안보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 중이라 대미(對美) 투자 요구 등으로 압박 수위가 지속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예측이다.
다만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당장 미국이 관세를 무작정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양대 반도체 기업이 공급자 우위인 시장에서 미국이 관세를 올리면 자국 빅테크에도 손해가 커 관세를 올리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끌고 오는 대안 법안들을 근거로 하는 여러 종류의 추가 관세가 난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섣불리 재협상에 나서려 하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로선 어떤 변동이 있을지 관찰하면서 대응책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는 상황이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도 당장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미국 내 후속 움직임, 다른 나라 정부의 대응 등을 봐가며 대처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미국 사법부의 판결로 국제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는 한미 관세 합의를 통해 확보한 이익 균형과 대미 수출 여건이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한미 간의 특별한 동맹관계를 기초로 우호적 협의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