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윤기쁨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3대 국부(國父)가 되겠다는 담대한 야망을 품고 있다. 전쟁의 폐허에서 산업화를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 외환위기라는 역경에서 정보화를 앞당긴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자신의 재임 기간 내에 국격을 세계 3강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역전의 발상이다. 뒤처진 국운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선택한 패러다임 전환의 수단은 인공지능(AI)이다. 이런 맥락에서 150조원으로 계획된 국민성장펀드는 과거 정부가 민간 운용사에 자금을 맡기던 위탁 운용 방식에서 벗어나 국책은행이 직접 산업 생태계와 자금 조달 구조를 짜는 설계자로 나선 점이 가장 큰 변화로 지목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성장펀드는 한국산업은행이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직접 운용에 나서는 구조로 전체 150조원 중 첨단전략산업기금으로 75조원을 먼저 투입해 리스크를 1차적으로 흡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 자금 75조원을 일대일로 매칭하는 전략으로 설계됐다. 산업은행이 단순한 자금 공급원을 넘어 민간 자본이 진입하기 어려운 첨단 산업에 선제적으로 진입해 물꼬를 트는 앵커 역할을 직접 수행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존 정부는 모태펀드나 성장사다리펀드를 통해 시장에 자금을 공급해왔다. 정책자금이 하위 펀드에 출자(LP)하고 실제 투자는 민간 운용사(GP)가 결정하는 재간접 구조가 주를 이룬 것이다. 이는 민간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국가 전략상 시급한 대규모 프로젝트나 리스크가 높은 분야로 자금을 유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반해 국민성장펀드는 지원 대상과 범위를 기존 정책금융과 차별화하면서 눈에 띄는 전략적 변화를 꾀했다. 과거 정책자금이 중소·벤처기업 지원에 머물렀다면, 국민성장펀드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AI 등 첨단전략산업 분야의 생태계 전반을 지원 대상으로 확장했다.
설계자로서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문은 AI다. 국민성장펀드는 AI 산업의 물리적 토대가 되는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가 소모하는 막대한 전력을 감당하기 위한 전용 송배전망 구축과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 등을 '메가 프로젝트'로 규정했다. 산업은행은 전력망·용수시설 등 초기 비용이 높고 회수 기간이 긴 '메가 프로젝트'의 특성을 반영, 법 시행일로부터 20년 이내인 2045년까지 초장기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AI 국가 기간망을 완성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한 벤처·스타트업 단계에 있는 국내 AI 반도체 팹리스(설계) 기업에는 대규모 설비 투자 및 M&A 자금을 지원한다. 이는 낙수 효과를 통해 소·부·장 생태계를 육성하고,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자금의 만기를 과거 정책 펀드보다 대폭 늘린 점도 차별점이다. 통상 7~10년 만기인 벤처펀드는 펀드 청산 시점이 도래하면 피투자기업의 성장 여부와 무관하게 엑시트(자금회수)를 위한 지분 매각이나 무리한 상장을 추진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국민성장펀드는 이러한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대출 상품의 경우 최장 15년까지 지원하는 등 만기 구조를 유연하게 설계해 혁신 기업들이 단기 실적 압박에 시달리지 않도록 했다.
정책금융 역사상 최초로 도입된 '민·관 합동 거버넌스'도 주목할 점이다. 산업은행의 직접 운용에 따른 관치 금융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민관합동전략위원장을 맡고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복층 심사 체계'를 도입했다. 1단계 '투자심의위원회'는 5개 산업 분과별로 민간 전문가 5인과 산은 직원 1인이 참여해 실무를 검증하며, 최종 결정은 금융위원장이 위촉하는 9인(정부·국회·민간 등)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심의회'가 맡는다. 산업은행이 운용을 주도하되, 최종 결정 등은 외부 전문가와 정부가 함께 쥐는 구조로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150조원 펀드 자금은 크게 대출 50조원과 투자 100조원으로 구성된다. 대출 부문은 '첨단도약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시설·R&D 자금을 저금리로 공급하며, 중소·비수도권 기업에는 우대 혜택을 제공한다. 100조원 규모의 투자 부문은 ▲직접투자(15조원) ▲간접투자(35조원) ▲인프라금융(50조원)으로 세분화해 유니콘 기업 육성부터 대규모 인프라 PF까지 기업 생애주기와 프로젝트 성격에 맞춘 입체적인 자금 공급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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