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전한울 기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경주 선언과 함께 성료했다. 보호무역주의가 부상하는 시기, 각국 연대를 통해 산업 변혁기를 헤쳐나가자는 공감대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공지능(AI) 3강을 꿈꾸는 우리나라는 AI 협력이 돋보인 'APEC CEO 서밋'에 보다 관심을 표했다. 이번 행사 키워드는 '엔비디아'와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삼성·현대차·엔비디아 수장들의 '깐부 치맥 회동'에서부터 엔비디아의 GPU 공급 발표까지 불과 수일동안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였다. 수십년간 국가 경제를 지탱해 온 K-제조업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 속에서 중장기 경제 난제를 해결할 묘수가 나왔다는 기대감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이번 APEC을 통해 26만장 규모의 GPU를 대거 확보하게 됐다. AI 수요 급증에 따라 품귀현상까지 빚어진 핵심 장치를 보유량 기준 세계 3위 수준으로 대폭 확대한 성과다. 이에 따라 AI 대표 기업인 삼성·현대차·네이버는 5만~6만장 규모의 GPU를 확보했다. 그동안 기업들이 활용해 온 GPU 규모가 수천장대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10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달콤한 열매 이면엔 씁쓸한 뒷맛이 뒤따른다. 막대한 양의 GPU를 구축·구동하기 위한 인프라가 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 전력 인프라로는 GPU 26만장을 감당하기에 턱 없이 부족하다.
업계에서는 GPU 26만장 가동을 위해 GW(기가와트) 규모의 전략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1곳 이상의 대형 신도시가 1년간 소비하는 전력량과 맞먹는 규모다. 이처럼 인프라 증설이 한층 시급해졌지만, 송·변전 설비 건설사업의 50% 이상이 지연되는 등 실상은 지지부진하다. 이에 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 등 인프라 증설에 한층 고삐를 죄며 지역생산 전력을 대폭 확대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환경·안전성 우려로 지지부진했던 '원자력발전소(원전)'가 한층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태양광·풍력 에너지 대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감원전' 기조를 앞세워 원전 재가동 등에 보수적인 태세를 취해왔다. 같은 기간 해외 주요 국가들이 AI산업 확대에 발맞춰 원전 사업을 대폭 확대해 온 점과는 상반된 행보다. 정부는 13일 고심 끝에 '고리 2호기' 계속운전을 허가했지만, 추후 여러 원전이 가동을 멈추거나 계속운전 심사를 앞둔 점을 고려하면 추가 대안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3강 도약을 위한 핵심장치 실물이 확보된 만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에너지 확보 계획에 다각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재생에너지 연계 전략도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만, 막대한 전력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선 원전 가동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냉각 시스템 등 여러 기술적 역량이 빠르게 뒤따라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선 엔비디아의 발표가 '실질적 이행 약속이 아닌 대량 공급 의지를 내비친 표현일 뿐'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GPU는 제 아무리 많은 수량을 확보해도 열 관리, 전력망 확대 등 제반 기술 및 시설이 선(先) 구축되지 않으면, 최신 모델인 블랙웰도 앞선 H100~200 제품만 못한 성능을 구현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AI 시대 GPU가 지닌 가치를 고려하면 절대적인 수량은 매우 중요하다. AI 기능 및 성능을 고도화하기 위해선 막대한 양의 GPU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이를 활용조차 하지 못한다면 이번 GPU 확충은 뼈 아픈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유의미한 성과가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정부 주도 하의 제도·규제 개선이 시급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데이터는 쌓이고 AI는 발전한다. 유례없는 산업 변혁기 속에서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발빠르게 혁신적인 논의가 오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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