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우진 기자] 하나자산운용은 국내 금융지주 계열의 자산운용사 가운데서도 ETF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점유율 1% 벽에 부딪힌 하우스로 지적된다. 후발 주자의 전략적 선택이 오히려 성장 정체를 초래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반도체 등 주도 섹터의 상품 부재와 전면에 내세운 인기 ETF의 부진이 맞물리며 김승현 ETF·퀀트솔루션본부장의 상품 다각화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5일 딜사이트가 집계한 2월 ETF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하나자산운용의 순자산총액(AUM)은 3조5686억원으로 전월비 969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외형 성장은 지속했으나 순이익 증가 폭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실제 한 계단 위인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한 달간 5057억원을 유치했고, 순위가 더 낮은 삼성액티브자산운용도 1569억원을 새로 모았다. 시장 점유율은 0.92%로 내려앉으며 1% 고지 탈환에 실패했다.
니치마켓을 정조준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오히려 넘을 수 없는 천정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나자산운용은 타사 대비 늦게 ETF 경쟁에 뛰어들었다. 대형 운용사가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지배력을 공고히 한 시점이었다. 선두 주자로 꼽히는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상장 종목 수는 지난달 기준 각각 230개와 222개에 달한다. 후발주자인 하나자산운용은 인지도가 높고 경쟁이 치열한 지수나 섹터에서의 전면전 대신 희소성에 방점을 찍은 틈새 상품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대표적 사례가 1Q 미국우주항공테크다. 국내 최초 미국 우주항공 산업 투자 테마를 내걸어 시장 이목을 끌었다. 이 상품은 상장 한 달여 만에 순자산 1000억원을 넘어섰고 지난달 말 기준 5640억원을 기록했다. 스페이스X의 기업공개(IPO) 기대감이 투자심리를 자극하면서 자금 유입에 속도가 붙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달 신규 ETF가 쏟아지고 있어 중소형 운용사의 신상품이 주목받는 건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우주항공 테마를 선점하면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초기 안착은 그렇게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외연 확장 단계에서 한계가 드러났다. 특정 테마에 치중된 포트폴리오는 순환매 장세에서 대응력 부재로 이어졌다. 최근 시장 주도 섹터는 반도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위시한 반도체 기업이 슈퍼사이클을 바탕으로 한 실적 개선에 힘입어 주가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 지수 내 비중이 큰 대장주의 시가총액이 급증하며 코스피 지수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가증권시장을 넘어 코스닥 시장 전반으로 매수세가 확산되는 형국이다.
기록적인 랠리에도 하나자산운용은 수혜권에서 소외됐다. 쏠림이 극심한 라인업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나자산운용의 상장 종목 수는 19개에 불과하다. 이 중 7개가 미국 시장 투자 상품이다. 게다가 우주항공, 메디컬AI, 샤오미 밸류체인 등 협소한 테마에 집중된 형태다. 통상적으로 갖추는 코스피·코스닥 추종 패시브 ETF는 물론 국내 시장의 핵심인 반도체 섹터 상품조차 갖추지 못했다.
소수 상품에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점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정 상품의 수익률이 운용사 전체의 성장세를 좌우하는 양상이다. 1Q 미국우주항공테크 주가가 연초 고점 대비 하락 곡선을 그리면서 하나자산운용의 순자산 증가세 역시 정체됐다. 마케팅을 둘러싼 잡음도 신뢰도에 영향을 줬다. 스페이스X를 전면에 내세운 홍보 전략이 시장 안팎의 논란을 촉발했다. 상장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종목 편입을 전제로 한 마케팅은 투자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스페이스X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이 시장에서 부각되자 해당 상품의 실질적 수혜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며 투자심리는 더욱 위축됐다.
김승현 ETF·퀀트솔루션본부장의 책임론도 부각된다. 지난해 초 한국투자신탁운용을 떠나 하나자산운용에 합류한 김 본부장은 2년 차를 맞았다. 출범 초기 차별화된 테마형 상품으로 시장 진입의 초석을 다졌다면 이제는 외형 성장을 위한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과거 한투운용의 마케팅을 진두지휘하며 후발주자를 선두권으로 끌어올린 성과를 재현할 거란 평가다.
다만 틈새시장 공략이라는 기존 문법은 한계에 직면했다. 김 본부장은 한투운용 시절 미국 기술 섹터에 집중하며 테크 ETF 명가라는 입지를 구축했다. AI 열풍에 힘입어 빅테크 위주 ETF를 대형 상품으로 육성하며 운용사의 성장을 견인했다. 하나자산운용 합류 이후에도 유사한 전략을 이식했으나 결과는 상이하다. 플레이어가 늘어나며 시장 경쟁이 심화된 영향이다. 차별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협소한 섹터에 집중한 점이 걸림돌이 됐다.
기존 전략의 답습을 넘어서 새로운 판을 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독창적인 테마형 상품은 진입 초기 유효한 전략이지만 운용사의 영속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며 "끊임없이 바뀌는 장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초 상품군 확충과 선제적인 테마 발굴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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