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유범종 산업3부장] 승자의 저주란 말이 있다.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커다란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이 용어는 기업이 무리한 인수합병(M&A)이나 사업권 입찰을 따낸 이후 결과론으로 종종 쓰이기도 한다.
일례로 국내 면세사업자들이 최근 대면하고 있는 처지를 보면 이처럼 꼭 들어맞는 말도 없다. 2년 전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과 롯데 등과의 경합 끝에 인천공항 면세사업권을 쟁취한 호텔신라와 신세계가 대표적이다.
호텔신라는 이달 이사회를 열고 힘들게 따낸 인천공장 면세매장 일부를 철수하겠다는 뼈아픈 결정을 내렸다. 총 10년(5년+옵션 5년)의 계약기간 중 5분의 1만 채우고 손을 털겠다고 나선 셈이다. 인천공항에서 대기업 면세사업자가 중도에 사업권을 포기한 건 2018년 롯데에 이어 두 번째 사례다. 또 다른 승자였던 신세계 역시 호텔신라처럼 현재 면세사업권 반납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사업자가 중도에 사업권을 자진반납하게 되면 수천억원 안팎의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된 그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결국 손익으로 귀결된다. 수익은 나지 않는 가운데 임대료 부담이 지속되면서 더 이상 사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에까지 내몰린 것이다. 실제 호텔신라가 운영하는 신라면세점의 경우 지난해 757억원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198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불과 1년 반 만에 1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떠안았다.
이는 과거 국내 면세사업자를 먹여 살렸던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사라진 데다 외국인들의 방한 목적이 쇼핑이 아닌 관광으로 빠르게 변화된 부분이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인천공항 임대료는 여객 수와 연동되는데 이용객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니 객당 수익은 떨어지는 반면 임대료 부담은 커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호텔신라와 신세계는 생존을 담보로 인천공항공사(공항공사)에 40%에 달하는 임대료 감면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공항공사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방을 빼는 사태까지 번지게 됐다.
공항공사의 항변도 이해가 된다. 공항공사는 계약의 공정성과 입찰의 신뢰성 등을 고려할 때 중도에 임대료를 임의로 인하하는 건 절차적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입찰 당시 면세사업자들이 무리수를 둔 것에 공항공사는 책임이 없다는 말이다. 입찰 당시 호텔신라는 DF1 구역을 따내기 위해 최저 입찰가보다 68%, 신세계는 61% 각각 높은 금액을 써냈다.
안타까운 건 양측의 첨예한 대립각이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항공사 입장에서 고수익 구역 중심으로 계약 포기가 이어지면 공항 내 면세구역의 공백이 생기고 이는 이용객의 쇼핑환경 저하는 물론 공항 이미지 약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면세점 임대료는 인천공항 비항공수익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에 공항공사 전체 재정 균형에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면세사업자도 입장이 다르지 않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만 해도 전세계 면세점 매출 1위를 차지한 곳이다. 특히 인천국제공항에 입점하는 것만으로 명품 브랜드와 협상력에서 큰 이점을 볼 수 있고 해외 관광객들에게 면세점을 알릴 수 있는 적극적인 홍보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공항 면세점을 포기한다는 건 단순한 수익 손실을 넘어 상징적인 가치 창출의 기회를 잃게 되는 셈이다.
사실 이번 분쟁의 본질은 다양한 외부환경 변화에 맞춰 계약구조가 미리 디자인되지 않았다는 점이 크다. 이로 인해 양측 모두 곤란한 상황에 빠졌고 누군가 먼저 양보하거나 계약구조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균형이 무너질 지점까지 도달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당사자(공항공사, 면세사업자, 정부) 등의 적극적인 협력이 이뤄져야만 할 것이다. 당장 생존의 기로에 내몰린 면세사업자들을 위해 해외공항의 사례처럼 일정기간 임대료 감면이나 유예 등의 유연한 임대료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세제 지원 또는 보조금 마련 등 노력이 요구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단순히 여객 수와 연동된 임대료 구조를 고정비와 매출 연동형을 반영한 혼합으로 바꾸는 등 전반적인 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도 필요해 보인다. 인천공항의 글로벌 경쟁력은 단순히 규모와 방문객 수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안의 다양한 시설과 방문객들의 느끼는 가치 등이 핵심이며 면세점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공항공사와 면세사업자 모두 자중지란에 빠지지 않도록 원만한 타협점 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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