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이정석 제주항공 경영기획본부장(전무)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임기 내내 부채와 씨름하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한차례 치솟았던 부채비율은 최근 여객기 사고 이후 영업환경이 나빠지면서 또 한 번 가파르게 상승해 재무부담을 가중시키는 모습이다. 여기에 기단 현대화 프로젝트부터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수합병(M&A)에 이르기까지 재무 리스크를 동반하는 경영 과제들이 연이어 쌓여 이 전무의 재무관리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1971년생인 이정석 전무는 2020년 제주항공 재무기획본부장(현 경영기획본부장)으로 부임한 이후 줄곧 제주항공 재무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제주항공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는 애경그룹 유통 계열사 AK플라자에서 경영기획본부장직을 수행했다.
이 전무는 애경그룹 '재무통'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코로나19 국면에서 제주항공을 구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제주항공은 2021년 2분기 부채비율이 1156%로 치솟는 등 코로나19 확산 당시 국제선 운항이 대거 중단돼 적자가 누적된 여파로 재무구조가 크게 흔들렸다. 같은 해 이 전무는 2066억원 규모의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며 자본잠식을 막고 부채를 관리하는 솜씨를 발휘했다. 이와 함께 제주항공은 모기업인 AK홀딩스로부터 유증 방식으로 1572억원을 수혈 받은 덕분에 경영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지난해 말 뜻하지 않은 여객기 사고가 터져 나오면서 제주항공은 다시금 경영 악재에 직면하게 됐다. 실제 제주항공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마이너스(-1256억원)를 나타냈다. 지난 사고 이후 제주항공이 항공 안전성을 확보하고자 올해 운항편을 축소 운영하기로 결정하면서 영업수익이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제주항공은 올 상반기 동안 419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적자 누적으로 이익잉여금도 소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제주항공 이익잉여금은 456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49% 급감했다. 앞서 제주항공은 배당 재개에 대비해 자본준비금(주식발행초과금)을 감액하고 약 3883억원을 전입해 결손금을 전액 해소한 바 있다. 현행 상법상 기업은 자본준비금과 이익준비금(이익잉여금) 총액이 자본금의 1.5배를 초과할 경우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문제는 제주항공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줄어든 탓에 외부 차입에 의존하면서 부채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올 상반기 말 제주항공 부채비율은 653%로 6개월 새 136%포인트(p) 급증했다. 특히 같은 기간 1년 이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차입금(3744억원)이 46% 뛰는 등 두드러지는 증가폭을 나타냈다.
이 전무는 영구채 발행 카드를 꺼내들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제주항공은 최근 자본확충을 통한 재무건전성 확보 일환으로 1000억원 규모의 국내 무기명식 무보증 사모 채권형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결정했다. 해당 신종자본증권이 자본 항목으로 계상되면 단순 환산 시 부채비율은 481%로 낮아질 것으로 추산된다. 신종자본증권은 통상 상환만기가 없거나 30년 이상으로 길어 영구채적 성격을 지닌 채권으로 분류되며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제주항공 재무지표에 경고등이 켜진 와중에 대규모 투자가 계획돼 이 전무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한층 커지게 됐다. 제주항공은 오는 2030년까지 평균 기령을 5년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기단 현대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올 들어 B737-8 항공기 4대를 구매 도입한 데 이어 연말까지 2대를 추가 구매해 들여온다는 방침이다. 올 초 항공기 선납금(PDP)을 충당하고자 금융기관으로부터 1300억원을 단기차입 형태로 끌어오기도 했다. 신규 항공기 도입이 계속될수록 재무적 압박도 한층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 전무는 진에어를 주축으로 한 통합 저비용항공사(LCC) 출범에 대비해 투자 실탄을 마련해야 하는 임무도 부여받았다.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이 LCC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려면 M&A가 필수적이라는 시각을 견지 중이다. M&A 유력 매물로는 이스타항공이 꾸준히 거론된다. 실제 제주항공은 지난 2019년 이스타항공 인수를 추진했지만 한차례 무산된 전력이 있다. 현재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LCC 3사 간 통합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통합 LCC 출범 예상 시기는 오는 2027~2028년이다.
이 전무와 제주항공 앞에 묵직한 숙제가 놓인 데 반해 이를 뒷받침할 현금 여력은 빠듯해 보인다. 올 상반기 제주항공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371억원으로 반년 새 28% 감소했다.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는 62% 줄어 낙폭을 키웠다. 사실상 모회사 지원 없이는 M&A에 뛰어들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셈이다. 최근 애경그룹이 애경산업 매각을 추진해 제주항공의 M&A를 지원사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애경산업 매각대금은 4000억원 후반대로 추정된다.
증권가에서는 제주항공이 무리한 확장보다 속도조절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제주항공이 재정비에 나설 시기로 기존 성장전략을 유보하고 위기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돼야 한다"며 "항공은 안전이 중요하고 여행소비도 심리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제주항공이 사고 영향에서 벗어나 정상화를 꾀하려면 최소 1년 이상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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