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기령 기자] "신생 벤처캐피탈(VC)은 진짜 죽을 맛이에요."
취재하면서 만난 한 VC 관계자는 업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모태펀드와 같은 정책 자금이 대형 VC로 편중되면서 소형⋅신생 VC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대로 가면 대형 VC 외에는 살아남는 곳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실 VC 간 양극화는 수년째 계속돼온 업계의 고질병이다. 다들 인식하고 있지만 뚜렷한 방안이 없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책 자금 기반의 출자사업은 출자 규모가 한정돼 있어 위탁운용사(GP) 선정 시 실적이 검증된 운용사에 대한 선호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심사 기준 역시 해당 운용사의 자금 운용 이력과 기존 출자사업 성과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투자금 회수(엑시트) 성과가 적은 소형 VC보다는 실적이 입증된 대형 VC로 자금이 쏠리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3~4년 전 코로나 시기에 자금이 대거 융통되면서 벤처 투자 시장이 활발했을 때 우후죽순 생겨난 VC들이 시장이 어려운 요즘 맥을 못 추고 있다. 업황 불황에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신규 자금 조달이 막히면서다.
업력이 짧은 소형⋅신생 VC들은 출자사업에서 GP로 선정되는 것도 어려운데 이들이 어쩌다 출자사업을 따내더라도 펀드 매칭과 자금 확보에서 또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한 해 동안 투자를 한 건도 집행하지 못한 VC도 왕왕 눈에 띈다. 최근에는 VC 3곳이 경영 실적 악화로 VC협회에 협회비조차 내지 못해 회원사 명단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업력이 5년 이상인 중견 VC들도 출자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업력 6년의 한 VC는 이달 중으로 펀드 결성을 완료해야 하는데 출자자를 모두 확보하지 못해 대표가 막바지까지 고군분투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VC 업계에선 다들 "남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다.
금융지주를 모회사로 둔 금융계열 VC들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지주사의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을 의식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다. 실제로 한 금융지주 계열 VC는 최근 심사역을 전문계약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해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주발 고강도 구조조정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만큼 다른 금융계열 VC들도 구조조정 여파가 확산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출자자를 확보하지 못해 펀드 결성에 어려움을 겪는 VC가 속출하면서 업계에선 "제2의 대성창업투자 사태가 나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대성창투는 2023년 모태펀드와 한국성장금융 출자사업에서 GP로 선정됐다. 하지만 펀드 결성 막판에 자금 조달에 실패해 GP 자격을 반납했다. 이로 인해 한동안 두 출자기관의 출자사업에 재지원이 제한됐다.
출자자 확보 실패로 GP 자격을 반납하는 사례는 충분히 또 나올 수 있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다행인 건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는 점이다.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벤처투자 지원에 9000억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자금이 VC 업계의 빈틈을 얼마나 메울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신생 VC들의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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