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권녕찬 기자] 기자는 탑텐(TOPTEN)과 폴햄(POLHAM) 브랜드 애호가였다. 심플한 디자인과 가성비, 토종 브랜드라는 점 때문에 옷 살 일이 있으면 탑텐 매장을 늘 1순위로 찾았다. 하지만 그간 잘 몰랐던 탑텐의 본모습을 알게 된 지난해 6월 이후로는 방문하지 않고 있다. 나름의 '10원짜리 자존심'을 내세우며 불매하는 중이다.
탑텐 운영사 신성통상이 이달 초부터 2차 공개매수에 돌입했다. 지난해 6월 1차 공개매수 실패 이후 두 번째 '딜(Deal)'이다. 공개매수 후 상장폐지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6월 9일부터 31일간 지분 16.13%를 공개적으로 사들인다. 주당 매입가는 4100원이다.
1차 때보다 표면적으론 진일보했다. 공개매수가 4100원은 지난해 6월 당시보다 78.3% 할증된 가격이다. 2차 공개매수 시작 전 영업일 종가보다는 35.76% 높은 금액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신성통상의 BPS(주당순자산가치)인 3591원보다도 높은 가격이다. 1차 공개매수가(2300원)는 당시 BPS(3136원)보다도 낮아 거센 반발에 부딪혔었다.
하지만 소액주주들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20일 오후 1시 기준 주주행동플랫폼 액트의 소액주주 지분율은 4.49%다. 이들은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신성통상이 '극딜(데미지를 입혔다는 게임용어)'을 놨다고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는다면 신성통상이 95% 지분율을 모으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1차 때보다 공개매수가를 상당 부분 올렸음에도 주주들의 불만이 여전한 이유는 뭘까. 그간 사실상 '무배당'으로 일관해온 신성통상이 주주들에게 충분히 보상할 정도의 가격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당 4100원은 여전히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반영하지 못한 금액이라는 지적이다.
염태순 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한 2002년 말부터 현재까지 신성통상이 배당한 사례는 단 3차례에 그친다. 3차례 중 배당성향이 가장 높았던 적은 2023년 8.6%다. 반면 염 회장과 아들 염상원 씨가 최대주주인 비상장사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은 2021년 무렵부터 소위 '폭탄배당'을 했다. 특히 2021년 가나안은 121억원의 당기순이익 중 60억원을 배당했다. 49.44%의 배당성향이었다.
게다가 2021년 염 회장은 세 딸에게 지분을 증여했는데 이후 가나안이 이를 고가에 되사면서 편법 증여 논란도 있었다. 당시 가나안이 세 딸의 지분을 사들인 금액은 주당 4920원이었다. 소액주주들은 현재 2차 공개매수가가 이보다도 낮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하기도 한다.
신성통상의 재무 여력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올해 1분기 기준 PBR(주가순자산비율)은 1.13배 수준이다. 자금 사정이 넉넉해 충분히 주주환원책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같은 시점 이익잉여금은 3726억원이다. 시가총액의 64% 수준이다. 그간 신성통상은 주주에게 이익을 분배하지 않고 내부에 쌓아두고 있다는 지적을 오랜 기간 받아왔다.
이 같은 일련의 내용을 종합하면 신성통상은 상장사지만 '최대주주' 중심의 자본 운영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상장폐지가 완료되면 이러한 추세는 불 보듯 자명하다. 3726억원의 이익잉여금은 오너일가만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액주주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다.
소액주주들의 결집력이 지분율 95%선을 저지할 수 있을 지는 확신할 수 없다. 신성통상은 2차 공개매수 이후 3차 공개매수를 거치거나 아니면 포괄적 주식교환에 곧바로 돌입해 상장 폐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포괄적 주식교환에서 이를 반대하는 주주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이 주어진다.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보상을 할 추가 기회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간의 그릇된 자본 운영 방식을 인정하고 마지막 선물을 주는 차원에서 소액주주에게 더 큰 배분을 했으면 한다. 세상은 처음보다 마지막 모습이 더 크게 남는다. 그러면 기자 역시 '10원짜리 자존심'을 내려놓고 예전과 같이 탑텐 매장을 편한 마음으로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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