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최근 재점화된 KAI 민영화 논의는 단순한 지배구조 개편을 넘어 대한민국 항공 우주 산업의 '기술 자립'을 겨냥하고 있다. 록히드마틴 등 글로벌 원제작사(OEM)의 승인 없이는 정비조차 불가능한 폐쇄적 구조를 탈피하고, 국산 완제기 설계와 정비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민간 파트너를 찾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업계가 주목하는 반면교사는 글로벌 베스트셀러로 통하는 록히드마틴의 F-35 사례다.
글로벌 시장에서 록히드마틴의 F-35는 현존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지만, 구매국들 사이에서는 '열어볼 수 없는 블랙박스'로 통한다. 기체 도입 후 무장 통합이나 소프트웨어 개량 시마다 원제작사(OEM)의 승인과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기술 종속 구조 때문이다. 실제 한국 공군 역시 F-35A 40대를 운용하며 독자적인 정비 주권 행사에 제약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재점화된 KAI 민영화 논의가 '무늬만 국산'을 넘어선 실질적 기술 자립의 시험대로 불리는 이유다.
K-방산의 자부심으로 불리는 국산 전투기 'KF-21'의 부품 국산화율은 현재 가치 기준 약 6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투기 가격의 25~30%를 차지하는 심장인 '엔진(GE사 제품)'과 핵심 항전 소프트웨어 등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 기술은 여전히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완제기는 국산일지라도 제3국 수출 시 엔진 제작국인 미국의 수출 승인(EL)을 받아야 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실제로 과거 국산 경공격기 FA-50의 우즈베키스탄 등 중동·동남아 수출 추진 과정에서 미국 측의 부품 수출 승인 거부로 사업이 난항을 겪었던 사례들은 이러한 기술 종속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현재의 공공 주도 지배구조 아래서는 플랫폼(KAI)과 무장(LIG·한화) 기업 간의 기술 장벽을 허물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책 과제 중심의 수직적 구조에서는 기체 설계 데이터와 무장 통합 소스코드를 민간 기업끼리 유기적으로 공유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민영화 논의의 본질은 민간 주도의 '설계 통합 모델'을 구축해, 외산 소프트웨어에 의존해온 록히드마틴식 폐쇄성을 뿌리부터 끊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이 과정에서 인수 후보군인 한화와 LIG의 행보는 서로 다른 기술적 지향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한화의 경우,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공동 추진 중인 '1만5000파운드급 첨단 항공엔진 개발' 등 핵심 부품 내재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2030년대 중반까지 KF-21의 엔진을 국산으로 대체해, 해외 제조사의 수출 승인(EL)이나 기술 통제(ITAR)로부터 자유로운 '독자적 수출 기반'을 닦으려는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한화시스템은 AESA 레이더의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인 '질화갈륨(GaN) 반도체 송수신 모듈'의 국산화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이는 전투기의 '눈'에 들어가는 핵심 소자까지 독자 공급망 안에 두어, 미국의 기술 통제(ITAR)로부터 자유로운 운영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다만, 이러한 수직계열화가 국내 방산 생태계의 다양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대목이다.
반면 LIG는 기체 플랫폼의 중립성을 유지하며 전문 기업들이 협력하는 '유럽형 에어버스 모델'의 논리를 따르는 모습이다. 특정 무장 체계에 기체가 귀속되지 않는 구조를 통해, 구매국에 다양한 무장 통합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는 특정 제조사의 독점 구조를 경계하는 시장에서 록히드마틴식 폐쇄성을 극복할 구조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설계 데이터의 유연한 공유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확보했던 에어버스나 그리펜의 사례는, 특정 기업에 공급망을 종속시키는 대신 전문사 간 연합을 통해 안보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모델의 실효성을 뒷받침한다.
특히 이러한 개방형 모델은 부품 제조국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수출 승인이 취소됐던 과거 '독일의 사우디향 수출 금지(Veto)' 사례와 같은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한다. 특정 거대 기업에 모든 공급망을 종속시키는 대신, 전문 기업 간의 연합을 통해 구매국과 수출국 모두에게 '안보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취지다.
시장에서는 이번 KAI 민영화의 향방에 따라 향후 KF-21 등 국산 완제기의 '수출 자율성'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 방산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수전은 단순히 기업의 덩치를 키우는 M&A가 아니라, 대한민국 항공 우주 주권의 설계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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