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성희 산업2부장] "모래 위에 집을 지지 말아요. 해변 가까운 곳에도. 비록 보긴 좋지만 이내 무너지고 말아. 또 다시 지어야만 해…"
갑자기 어릴 적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을 맡은 서울-세종 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연초부터 들려오는 건설현장 사고 소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 노래의 구절이 안전하고 튼튼한 건설현장 시공을 목적으로 지어지진 않았지만, 직관적으로 무엇이든 기초가 튼튼하고 정석의 방법으로 쌓아 올려야 문제가 없다는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다. 한 번 할 때 제대로 해야 두 번 세 번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는 진리도 자연스레 뒤따라온다.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건설업을 비롯해 사람의 노동이 개입해야 하는 산업현장에서 안전사고 예방을 강조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흔히 '무사고 00일'로 하루하루 업데이트 되는 입간판의 존재는 안전사고에 대한 예민함은 늘 있었다는 얘기다.
특히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부실 시공과 관리 소홀로 인한 인명 참사를 겪었던 우리나라로선 시공 중이던 건물이, 아파트가, 교량이 무너지는 일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공사 현장에서 단순 인명 사고는 현장의 안전 관리 및 설비 부족으로 벌어질 수도 있고 개인의 부주의로 벌어질 수도 있어 원인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시공 중이거나 준공된 구축물의 붕괴 사고는 결국 시공사의 잘못이다.
안전사고란 무릇 예방이 가장 중요하기에 정부에서도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했고, 이러한 고민은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란 법률로 구체화됐다. 간단히 말하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명시함으로써 책임자가 안전사고에 경각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관리하란 취지다.
최초 시행된 지 3년째에 접어드는 이 법은 아직도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예방보다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에 집중돼 법이 실제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처벌 수위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설업의 경우 제조업과 함께 산업재해 발생률이 높은 업종이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에 상대적으로 더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중소 건설사들은 인건비 부담과 안전관리 인력 부족, 법률상 의무사항 모호함 등의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제도의 개선으로 접근할 문제지, 처벌의 완화에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되더라도 경영책임자의 처벌이 적용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2022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대표적이다. 아파트 신축 공사 도중 최상층부부터 16개층이 한꺼번에 무너져 작업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사고다.
당시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아파트를 전면 철거하고 재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현대산업개발과 하청업체, 감리업체 관계자 17명과 법인 3곳을 재판에 넘겼었다. 현대산업개발과 하청업체가 서로 책임공방을 벌이며 판결이 지연됐고, 올해 1월 사고 발생 3년 만에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HDC현대산업개발과 하청업체 현장소장 2명에게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시공 책임자 3명에게도 각각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HDC현대산업개발 법인에는 벌금 5억원, 하청업체와 감리업체에도 각각 벌금 3억원과 1억원이 부과됐다. 하지만 HDC현대산업개발 전 대표와 하청업체 대표 등 경영진은 무죄가 선고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전 사건으로, 경영진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검찰은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와 관련한 피고인 20명에 대해 모두 항소를 제기했다.
중대재해법이 도입된 이후에도 사고는 줄지 않고, 경영진 실형은 미미해 법 취지가 무색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명시함으로써 경영책임자들이 안전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고 부실시공을 미연에 방지하는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는 법적 조치다. 강력한 법적 제재가 실현돼야 건설현장 안전 시공의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는 교량 붕괴 사고와 관련해 "당연히 책임지겠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또 현대엔지니어링이 진정성 있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건설사들의 시공 현장은 특성상 높은 위험한 작업이 많고 인력을 기반으로 하는 일이다보니 사망자 수가 타 업종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다는 토로도 나온다. 하지만 돌다리도 짚고 건넌다는 마음으로 공사에 임해야 한다. 특히 대규모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부실시공 사고는 다시는 없어야 한다. 건축물이야 다시 지으면 된다지만, 인명 피해는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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