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국내 전선업계 1·2위인 LS전선과 대한전선 간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대한전선을 계열사로 둔 호반그룹이 최근 LS전선 모회사인 LS 지분 일부를 확보, 자회사 간 갈등이 그룹 차원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타법인은 올해 초부터 이달 14일까지 LS 주식 102만8720주(1179억원)를 순매수했다. 이는 자기주식을 제외한 의결권 주식 총수(2734만7538주) 대비 3.8%에 해당한다. 시기를 지난달부터로 한정하면 기타법인은 87만866주(998억원)를 매입해 지분 3.2%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타법인이 순매수한 LS 주식 물량 중 상당량은 호반그룹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호반그룹은 최근 LS 지분 매입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단순 투자 목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호반그룹 관계자는 "전선 산업의 성장성을 보고 단순 투자한 것"이라며 "그룹 자금 유동성이 좋은 상황에서 대한전선을 운영하며 관련 분야의 미래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호반그룹의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자회사 간 특허권 침해와 기술 탈취 의혹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호반그룹이 LS그룹에 대한 협상력을 강화하거나 압박할 수단으로 LS 지분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상법상 3%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임시 주주총회 소집 청구권과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내부 경영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회계장부 열람권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호반그룹이 이들 법적 권한을 십분 활용해 대한전선과 LS전선 간 분쟁에서 유리한 자료를 확보하려 하거나, LS그룹을 압박할 만한 요구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LS전선과 대한전선 간 분쟁의 초반 흐름은 LS전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양사 갈등 출발점인 버스덕트(건축물에 전기 에너지를 전달하는 장치) 특허 침해 소송의 2심 재판부는 지난 13일 1심과 마찬가지로 LS전선의 손을 들어줬다. 대한전선이 LS전선에 지급해야 할 배상액은 1심보다 3배 높은 15억여원으로 결정됐다. 대한전선은 현재 상고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지난 2018년 기아 화성 공장에서 발생한 정전 사고 관련 손해배상 소송의 대법원 판결도 기다리고 있다. 재판부는 2심까지 LS전선의 단독 책임으로 판단했는데, LS전선은 대한전선과 공동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두 회사는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을 둘러싸고도 갈등을 벌이고 있다. LS전선이 보유한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 노하우가 가운종합건축사무소를 통해 대한전선에 유출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대한전선과 가운종합건축사무소 관계자 등을 형사 입건했으며, 지난해 11월까지 대한전선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해당 사건의 수사 결과는 올 상반기 발표될 예정이며, 기술 유출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양사 간 소송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LS전선이 해저케이블 설비 구축과 연구개발(R&D)에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한 만큼 향후 소송 가액이 조 단위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호반그룹이 LS 지분 3%를 확보하면 LS를 상대로 내부 자료 공개를 요구하거나 주주총회 소집을 추진하는 등 주주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며 "만약 LS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호반이 가처분 신청 등의 법적 대응을 통해 압박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LS그룹의 대응 방식에 따라 자회사 간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LS그룹의 지배구조를 고려하면 호반그룹이 단기간 내 경영권을 위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난해 말 기준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과 특수관계인 43명이 LS 지분 32.1%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사 시 우호 지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사주도 15.1%에 달한다. 이를 종합하면 오너 측의 실질 지배력은 47%에 이른다.
호반그룹이 취득한 LS 지분 규모는 다음 달 주주명부 갱신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될 전망이다. LS그룹은 아직 호반그룹이 취득한 LS 지분율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LS그룹 관계자는 "내달 주주명부를 통해 정확한 지분 변동을 확인한 후 대응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며 "현재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주주 일가와 자사주를 포함하면 실질 지배력은 47%에 달하기 때문에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며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내부 결속력이 강해지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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