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성희 산업2부장] 블랙핑크 로제의 'APT'(아파트)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이를 인용한 기사와 칼럼이 왕왕 눈에 띈다. 칭찬도 여러번 하면 듣기 싫고, 같은 말을 거듭 반복하면 '뇌절'이라고 비난받기 일쑤지만, 이를 무릅쓰고 한 번 더 언급해 보려 한다. 우연찮게 신문을 보다 로제의 'APT' 노래가 빌보드 글로벌 차트에 15주간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종전 해당 차트에서 가장 오랜 기간 1위를 차지한 노래가 캐롤연금이라 불리는 머라이어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라니 어마어마한 대기록이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 한 것은 해당 기사의 신문지면 배치가 우울한 소식만 가득한 '건설 부동산' 면의 바로 뒷 페이지였다는 점이다. 해당 신문의 건설 부동산 면에는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이 늘어난 가운데 2월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전월 대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담은 기사 등 암울한 기사만 가득했다. 사실 이 업계에 암울하지 않은 소식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로제의 '아파트'는 호황에 호황을 거듭하고 있지만 국내 주택 부동산 경기는 불황에 불황을 거듭하고 있다.
분양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업계가 전반적으로 시름을 앓고 있지만, 그나마 중대형 건설사들은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긴 업력으로 그간 쌓아 온 체력이 있기 때문에 잘 버티면 이 또한 지나갈 테니 말이다. 문제는 고통의 세월을 이겨낼 체력이 없는 곳들이다. 건설사 뿐만 아니라 시행사도 분양 물건은 없고, 털어내지 못한 미분양 주택 때문에 돈이 돌지 않아 존폐의 기로에 선 곳이 한 두곳이 아니다.
실제로 국내 주택시장의 미분양 문제는 끓는 화약고와 같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12월말 기준 7만173가구로 집계됐다. 2021년말 1만7710가구에 그쳤던 미분양 주택은 고금리 기조가 이어진 2022년과 2023년 각각 6만8148가구, 6만2489가구로 6만 가구대로 뛰었다가 지난해 말 7만 가구도 넘어선 것이다. 공식 집계상 7만 가구이지, 업계에선 실질 미분양 주택이 10만 가구 이상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현재의 미분양 물량은 과거 1997년~1998년 외환위기 시기와 2007년~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시장 상황이 비정상적인 지경에 이른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자체적인 자구 노력만으로는 쉽사리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과정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한 신동아건설과 대저건설과 같이 백기를 들어올리는 건설사들이 발생한다면 우리 경제는 심각한 경기 침체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 자명하다.
과거를 한 번 반추해 보자. 외환위기 당시 미분양 주택 수는 10만 가구를 상회했고, 정부가 99년부터 주택 경기 부양을 위해 주택시장 활성화 및 수요확대를 위한 경기활성화 대책과 규제완화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러한 정부 주택수요 확대 정책에 힘 입어 2002년 미분양 주택 수는 2만5000가구 수준까지 감소했다.
2007년과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미분양 주택이 11만 가구도 넘어섰는데, 2009년 양도세 한시 면제(2.12 대책), 2010년 지방 주택경기 활성화 방안과 미분양 해소 및 거래 활성화 방안 등을 통해 2010년 말 8만9000가구까지 떨어졌다. 8만 가구대로 감소한 것은 2007년 7월 이후 41개월 만이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4일 당정협의회를 통해 비수도권 미분양 해소를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수도권의 악성 미분양 적체가 내수건설 경기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으로, 한시적 대출 규제 완화를 통해 미분양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규제 완화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해 실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계부채도 한국 경제에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는 마당에 또 다시 대출 수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단기적으로는 거래세와 양도세를 인하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지방 인구절벽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방 미분양 주택 감축을 위해 기존 발표된 세제 및 금융 대책을 차질없이 관리하고 CR리츠도 조속히 출시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지역 경제에 활력을 더하기 위한 지역활력타운, 민관상생 투자협약 등 지역에서 관심이 많은 공모사업도 신속하게 진행을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한 대처가 늦어질수록 피해는 커진다는 뜻인데, 국내 부동산 시장의 악성 미분양 문제로 인한 부실 후폭풍은 건설업을 넘어 금융업 등 실물 경제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부디 실효성 있는 정책을 통해 신속히 미분양 사태가 해소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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