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항소심 3번째 공판에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등에 관한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를 두고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28일 서울고법 형사13부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에 대한 2심 3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지난 14일 열린 2차 공판 이후 2주 만이다.
이 회장은 오후 1시 44분께 회색 넥타이에 검정색 정장 차림으로 서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법정 5번 게이트로 들어갔다. 앞선 1, 2차 공판과 마찬가지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굳은 표정을 시종일관 유지했다.
재판은 오후 2시부터 시작돼, 지난 2차 공판처럼 4시간 가량 진행됐다. 3차 공판의 쟁점은 ▲범행 동기 및 배경 ▲이사회 결의 ▲합병 계약 ▲업무상 배임 여부였다. 이날 검찰은 이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부정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경영권 승계 목적을 사업적 목적 뒤에 숨기고 제일모직의 주요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분식회계를 지시하는 한편, 반대로 합병 대상인 삼성물산의 주가는 인위적으로 눌렀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비율은 양사 주가 기준 1대 0.35로 삼성물산에는 역대 가장 불리한 시점에 정해졌다"며 "합병 발표 시기 건설 업종이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삼성물산 혼자 하락 추세였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 불리한 상황이었음에도 승계를 위해 합병을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2012년 삼성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프로젝트 G' 문건을 들면서 "문건 작성자는 합병이 승계의 핵심이었으며, 이러한 내용이 문건에 담겼음을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그간 검찰은 프로젝트 G에 (삼성물산 기업가치를 낮추기 위한)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등 조직적인 주주 기망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변호인단은 "합병 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가 모두 올랐다"며 "합병이 삼성물산에 결코 불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승계만이 유일한 합병 목적이라 단정할 수 없고, 사업적 목적도 목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1심 판결을 들면서 "검사가 이 부분은 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합병 당시 건설 업종 가운데 삼성물산 혼자 주가가 하락 추세였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삼성물산은 당시 실적 부진으로 '어닝쇼크'가 발생했고, 대규모 손실로 자본잠식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합병 비율은 법령상 주가로 산정하게 돼 있다"며 "4년에 걸친 수사 결과 주가 조작 사실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계획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회계 부정·부정거래 등을 저지른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 능력을 인정하기 어렵고, 회계 처리 기준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에 불복한 검찰의 항소로 항소심이 열리게 됐다.
앞선 2차 공판의 쟁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단독지배했는지 여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 간 공방이 오간 바 있다. 다음 재판은 내달 11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 등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쟁점이 될 예정이다. 재판부는 내년 1월 선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업계에서는 9년째 이어지는 '사법 리스크'가 이 회장의 경영 활동을 계속해서 발목 잡는다는 시각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대내외적인 위기론에 휩싸이면서, 이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 행보가 더없이 중요해지고 있다. 사법 영역에서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설명이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법부에 "삼성이 일어나야 대한민국 경제도 일어선다"며 이 회장의 재판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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