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동호 기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권업계는 상반기 양호한 실적을 올렸다.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올린 덕분이다. 자본시장 전문매체 딜사이트는 부동산 PF 사태 이후 증권업계의 수익성 제고를 위한 방안을 살펴보는 자리를 가졌다.
딜사이트는 2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 6층 스튜디오에서 '부동산 PF 사태 이후 증권사 수익성 제고 전략'을 주제로 증권포럼을 개최했다.
이승호 딜사이트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올해 부동산 PF가 국내 경제를 뒤흔드는 뇌관이 됐다"며 "그동안 믿음직한 수익원이었던 부동산 PF가 이제는 수익성과 건전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래 먹거리를 둘러싼 고민과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며 "오늘 자리가 증권사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는 하우성 KB증권 디지털사업총괄본부장, 류지해 미래에셋증권 디지털자산TF사업총괄팀장, 박용재 삼성증권 패밀리오피스센터 2지점장,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연사로 나서 다양한 사업 분야의 수익성 제고 방안에 대한 혜안을 나눴다.
◆ 국내 증권사도 AI 활용 필요, 외국 기업과 기술 격차 줄여야
가장 먼저 하우성 KB증권 디지털사업총괄본부장이 '증권사 AI 기반 금융플랫폼 혁신 방안'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하우성 본부장은 제도 개편과 투자 확대 등을 통해 해외 금융사와의 AI 기술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객 맞춤형 투자분석이나 금융사 내부 서비스부터 AI를 적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하우성 본부장은 "생성형 AI가 산업 전반에서 수 조 달러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금융업 밸류체인(가치사슬) 전반에서도 생성형 AI 활용이 확대될 것"이라며 "AI를 통해 수많은 고객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서비스해 비용을 줄이고 다른 곳에 투자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 본부장은 생성형 AI가 활용될 금융업의 세부 분야로 ▲영업 및 마케팅 ▲오퍼레이션▲IT 및 데이터 ▲법무‧리스크‧컴플라이언스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영업 및 마케팅의 경우 AI 자산관리 서비스, 오퍼레이션 분야에서는 리서치‧여신 심사 등 프로세스 자동화 등을 들었다.
다만 현재 국내 금융사들은 '망 분리' 규정 때문에 해외 기업의 생성형 AI를 적극 사용하는데 제약이 있는 상황이다.
하 본부장은 "정부기관에서 해외 서버 이용 제약 등을 2025년까지 점차 풀어주겠다고 해서 크게 기대하고 있다"며 "지금 해외 유수의 금융사들은 고성능 차량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우리나라는 성능이 안 좋은 차로 지방도로를 달리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DBS나 미국 JP모건‧메릴린치 등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점을 들었다. 하 본부장은 "우리는 보안이나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금융사가 클라우드를 아직 못 쓰고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부채도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 본부장은 금융사가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증권사나 은행 앱에서 고객의 행동 등과 관련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제대로 갖춰놓은 곳이 많지 않다고 안다"며 "데이터가 없다면 생성형 AI 시대가 오더라도 활용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금융사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할 때 고객의 투자 성과 등을 개인적으로 알려주는 개인화 리포트 및 리스크‧컴플라이언스, 기업 내부 운영 관련 최적화 분야 등에 먼저 적용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KB증권은 지난 3월부터 생성형 AI를 활용해 대화 형태로 맞춤형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스톡AI'를 서비스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협업도구 등에 생성형 AI를 접목해 직원들의 근무 방식을 바꿔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하 본부장은 "AI를 활용해 자원을 줄이고 인력을 감축하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직원이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불편함을 줄이고 단순 반복 업무를 기계가 대신하는 형태로 처음에 가야 AI가 직원 사이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며 "AI를 활용하는 직원이 늘어날수록 더욱 많은 서비스나 기능을 생각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 토큰증권 제도화, 다양한 투자수단 등장 기대
류지해 미래에셋증권 디지털자산TF팀장은 '토큰증권 및 디지털자산 시장 리뷰'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토큰증권은 부동산과 미술품 등 실물 자산을 분산 원장기술을 통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류 팀장은 토큰증권이 제도화될 경우 좀 더 다양한 투자 수단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토큰증권은 일반 회사들도 시장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류 팀장은 "토큰증권이 전면 제도화되면 웹3 생태계 경쟁이 본격 시작, CBDC와 페이먼트 등 다양한 서비스를 결합해 나가며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금융위원회도 적극적으로 법안 만드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하반기 중에 법안 발의가 되고 내년 중 통과돼 본격적으로 제도화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토큰증권 법제화가 이뤄지면 신종증권 발행을 통한 기초자산 선점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류 팀장은 "다양한 신종증권(투자계약증권)들이 본격 발행될 것"이라며 "초기에는 음원과 미술품, 명품 굿즈와 같이 오랜 기간 논의됐던 기초자산들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증권사와 은행들의 기초자산 공급사들에 대한 선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최근 열매컴퍼니가 국내 1호 투자계약증권(신종증권)으로 인정 받은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조각투자 청약 당시 12억3200만원 모집에 80억원이 몰렸다.
금융 인프라 측면에서도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류 팀장은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CBDC가 실제 지급결제에도 사용되는 형태로 준비를 하는 등 국가의 기본적인 금융 인프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 슈퍼리치 넘어 패밀리 모두 케어, '패밀리오피스' 필요성 증가
박용재 삼성증권 SNI 패밀리오피스센터 2지점장은 'WM 슈퍼리치 공략 방안'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최근 고액 자산가 비중이 늘면서 이른바 '슈퍼 리치' 고객 유치를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특히 초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가문 단위의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패밀리오피스'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지점장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1인당 부가 증가하는 국가"라며 "초부유층 고객 자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자체 집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0억 이상 자산가는 약 45만명, 300억원 이상 초고자산가는 9000명에 이르고 있다. 이 중 100억원 이상 자산가의 금융 자산 비중은 절반이 넘는 51.8%에 달했다.
박 지점장은 "각 고객 특성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맞춤형 멀티 패밀리 오피스가 필요해졌다"며 "(삼성은) '투자형 패밀리오피스'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프라이빗 딜 중심으로 거래수수료 수익을 올리고, 비재무적 서비스에 대해서는 무상 제공을 하는 방식이다. 또한 비재무적 서비스로는 유니콘 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컨퍼런스, IPO 등을 돕거나, 고객의 2~3세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박 지점장은 "지난 2020년 홍콩 등 해외금융사를 벤치마킹해 초부유층을 핵심 타깃으로 하는 패밀리오피스를 도입했는데, 2024년 현재 이미 100가문, 30조원 규모를 달성했다"며 "멀티 패밀리 오피스는 다수 가문의 자금을 직접 운용하거나 운용자문을 하는 금융사로, 오너가 직접 회사 혹은 재단을 설립해 자산을 관리하는 것보다 전문성 및 운용 효율성 면에서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멀티 패밀리오피스는 금융회사가 초부유층 가문을 대상으로 별도의 조직을 구성해 관리하는 형태다.
박 지점장은 "현재 패밀리오피스의 가입 조건은 총 금융자산 1000억원, 납입금 300억원 수준이지만 우선 100억원으로 시작해 일정 기간을 두고 계속해서 고객의 자산을 당사로 유입시키는 전략을 이용하고 있다"며 "초부유층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강남을 비롯해 용산, 서초, 송파, 신흥부자들이 있는 판교 등에 거점 점포를 설립해 신규고객 유치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올해 패밀리오피스센터가 본격 출범함에 따라 전문 채널 간 협력을 강화해 가문의 직접적 관리나 고객의 니즈 파악을 위한 프로세스를 고도화할 방침이다.
◆ 증권사 해외진출, 꾸준한 자본 투입 필요
마지막으로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증권사의 해외 진출 현황 및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증권사가 해외 진출에 성공하기 위해선 꾸준히 자본을 투입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국내 증권사가 해외 진출에 나선 지 40년가량이 지난 이 시점까지 해외진출 상황이 안정화 수준에 이르지 못한 건 대내외적인 이유로 회사 여건이 불안해질 때마다 해외 법인의 규모부터 축소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에 진출한 국내 증권사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14개 국내 증권사가 13개국, 69개 해외점포를 운영 중인데, 이는 타 국가와 비교해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몇몇 소수 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내 증권사가 눈에 띄는 해외 진출 성공 사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외 경기불황이 닥칠 때마다 당장 수익성 제고가 어려운 해외 법인 사업부터 축소 및 폐쇄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그간 ▲증권시장 국제화 ▲중국시장 개방 기대 ▲아시아신흥시장 전환 등의 이슈에는 증권사들의 해외진출 수가 급증하다가 ▲외환위기나 ▲국내 증시 침체 이슈에는 급감하는 모습이 포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본력은 해외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만큼 높은 경쟁력을 뜻한다"며 "해외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기간을 꾸준히 감내할 만큼의 체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동걸 전 KDB산업은행 회장의 말처럼 국내 증권사가 한국판 골드만삭스 타이틀까지는 얻지 못하더라도 실버만삭스 정도에는 다다를 수 있어야 한다"며 "글로벌 플레이어 반열에 속하기 위해서는 규모 확대와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증권사는 해외 시장 진출 초기 선진 시장 중심이었으나, 2010년 이후 아시아 신흥 시장 중심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최근에는 다시 선진시장으로 중심점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후 미국 주식 등 국내 투자자들로 하여금 해외자산 투자수요가 많이 증가한 것이 선진 시장으로 해외 진출국 트렌드가 변화한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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