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호황기 부동산신탁사들의 효자 노릇을 했던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 상품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라 건설사의 재무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신탁사로 책임준공 리스크가 전이돼서다. 사업장의 준공을 책임지기 위해 신탁사는 자체자금인 신탁계정대여금 투입을 늘릴 수밖에 없다. 회수가 어려운 신탁계정대여금 증가는 신탁사의 부실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으로 인한 신탁사의 재무상태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박안나 기자] 경기도 김포 고촌역 인근 A오피스텔은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7월 입주를 시작해야 했지만, 시공을 맡은 건설사의 파산으로 공사 일정을 지키지 못했다. 시공사 파산 및 준공기한 경과 이후에는 책임준공 특약을 제공한 신탁사에게 준공 의무가 돌아갔다. 해당 신탁사는 자체 자금을 투입해 공사를 진행했고 올해 4월에야 오피스텔 사용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건설사 부실이 부동산신탁사 부담으로 전이되는 사례가 생기면서 책임준공형 관리형 개발신탁이 새로운 골칫거리로 지목되는 분위기다.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는 리스크 현실화 가능성이 높지 않았지만,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부동산신탁사의 부실 뇌관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기자본 대비 과도한 위험 노출, 시공사 관련 리스크, 부실 사업장의 장기화 가능성, 부동산 시장의 회복 지연 등에 따라 신탁사들이 떠안게 될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 관련 위험을 꾸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부동산신탁사 14곳의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 사업장 관련된 PF잔액은 모두 24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책임준공형 사업장 가운데 신탁사의 책임준공기한이 이미 경과된 곳은 8% 수준으로, PF규모는 1조9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6개월 안에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 기한이 도래하는 사업장 중 예정 공정률과 실제 공정률 사이 차이가 10% 이상 벌어져 책임준공 기간을 넘길 가능성이 높은 곳의 비중은 3%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를 PF 금액으로 환산하면 각 약 8000억원에 달한다.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 기한이 이미 지났거나 임박해 위험도가 높은 사업장의 PF규모는 총 2조7000억원이다. 신탁사 전체 자기자본 합계 대비 50%를 웃돈다.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은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부동산신탁사가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해 준공 위험을 분담하는 상품이다. 일반적으로 홀로 책임준공이 어려운 중소건설사의 책임준공(미이행시 채무인수) 확약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신탁사의 책임준공 특약이 더해진다. 약속된 기한까지 준공이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신탁사가 직접 준공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준공 지연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의무도 발생하게 된다.
법무법인 한 관계자는 "아직 판례가 존재하지 않아 신탁사가 배상해야 하는 손해의 범위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법적 공방에 소요되는 시간 등 자원까지 생각하면 신탁사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전했다.
신탁사가 고유계정으로 사업 자금을 조달하는 차입형 토지신탁과 비교하면 위험부담은 크지 않지만, 시공사의 부실에 따라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은 더 큰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부동산 경기 둔화 등 영향으로 중소 건설사들의 재무건전성 저하 및 부도 사례가 증가하면서 신탁사들은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 관련 부실 위험에 노출됐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신탁사의 전체 PF잔액 중에서 예정 공정률과 실제 공정률 차이가 10% 이상인 사업장의 PF규모는 2022년 말 자기자본 대비 167.6%까지 치솟기도 했다.
2021년 말부터 금융비용, 건자재 및 인건비 등이 고공 행진했던 탓에 자재 조달 지연, 시공사 부도 및 회생 등으로 공정이 지연되면서, 예정 공정률과 실제 공정률 사이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사업장이 증가한 영향이다.
책임준공 사업 관련 위험노출액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부동산 신탁사들은 책임준공형 사업 신규수주를 줄이고 기존 사업장의 공정 만회를 위해 시공사 교체 및 추가 사업비 투입 등 노력을 이어갔다. 덕분에 예정 대비 실제 공정률이 10% 이상 낮은 사업장의 비중은 지난해 말 72.4% 수준으로 하락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신탁사들이 책임준공 관련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책임준공 약정사업 규모를 줄이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며 "하지만 신탁사 자기자본 대비 책임준공 사업 관련 PF잔액 규모는 여전히 과도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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