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로케트배터리'로 유명한 세방전지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기업가치제고(밸류업) 계획을 수립했다. 자사주 처리 방안을 놓고 갈등을 빚어온 소액주주를 달래기 위한 회유책으로 보인다. 눈길을 끄는 점은 세방전지 모기업인 세방㈜의 '밸류업 거리두기'다. 오너 3세 경영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지배구조 상단에 위치한 세방㈜의 주가 상승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세방전지는 지난달 27일 밸류업 프로그램을 공시했다. 이 회사가 주주가치 제고안을 공식적으로 명문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부적으로 ▲2028년까지 매출성장률 7% ▲배당성향 25% 설정 및 유지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유지 등이다.
세방전지는 밸류업 달성을 위해 견조한 수요 성장과 생산 케파(CAPA) 증설 및 효율화, 핵심 기술 고도화, 글로벌 매출 확대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지속가능경영을 전개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 세방전지, 소액주주 압박에 '백기'…창사 첫 밸류업 명문화
세방전지가 발표한 밸류업 정책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배당성향이다. 회사가 내놓은 배당성향 25% 목표에는 자사주 1%(14만주) 소각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의 경우 자사주 소각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현금배당성향은 8.55%였다.
증권사에서 추정하는 세방전지의 올해 순이익 컨센서스는 1570억원이다. 배당성향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자사주 1%(2일 종가 기준 94억원)를 소각하고, 주당 2250원 안팎을 지급해야 한다. 이 회사 주주들은 지난해 결산 배당금 1100원보다 약 105% 인상된 금액을 수령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주가치 제고에 무심하던 세방전지가 갑작스럽게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배경에는 소액주주 반발이 주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회사 소액주주 연대는 사측의 자사주 처리 방법을 문제 삼으며 금융감독원에 고발하는 등 물리적인 압박 공세에 나섰다.
예컨대 세방전지는 올 들어 총 3차례에 걸쳐 자사주 19만5979주(136억원 상당)를 임직원 상여 항목으로 처리했다. 지난해 말 이 회사 자사주가 1317만1073주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1.5%에 달하는 규모다. 주주연대는 세방전지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을 피하기 위해 자사주를 임직원 상여로 지급했고, 지분가치 희석과 주가 하락을 야기했다고 항의했다.
나아가 주주연대는 과거 세방전지가 사업적 연관성이 없는 미국 리조트 개발 투자로 158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며 추가적인 법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세방전지는 2019~202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더 드루' 리조트 개발 사업에 중순위 채권 형태로 투자를 집행했지만, 시행사 부도로 전액 손실 처리했다.
◆ '지배구조 상단' 세방㈜, 승계 직접 영향권 탓 밸류업 '無'
독특한 대목은 세방전지 모기업인 세방㈜은 밸류업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방㈜ 은 주가수익비율(PER)이 5.7배를 하회하고 있으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2배 선에 머물고 있다. 통상 PER은 10배 미만, PBR은 1배 미만일 때 주가가 저평가된 것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세방㈜은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방안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현재 따로 검토 중인 기업가치제고 계획은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업계는 세방㈜과 세방전지가 정반대의 선택을 한 주된 요인으로 오너 3세 승계를 꼽고 있다. 세방그룹 지배구조 상 오너 3세 후계자인 이원섭 전무가 경영 최상단에 오르려면 세방㈜을 장악해야 한다. 세방전지의 기업가치 제고는 세방㈜ 주가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세방㈜ 주가가 직접 상승하는 것보다는 부담이 크지 않다. 다시 말해, 세방㈜ 주가가 오를수록 이원섭 전무가 감내해야 하는 승계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방전지의 올 3분기 말 주주현황을 살펴보면 세방㈜이 지분율 37.95%로 최대주주다. 세방그룹 오너 2세인 이상웅 회장과 장남 이원섭 전무, 장녀 이령 전무, 오너 소유 회사 이앤에스글로벌 등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모두 더하면 39.79%다.
세방㈜은 ▲이앤에스글로벌 18.72% ▲이 회장 18.17% ▲이원섭 전무 1.67% 등이 총 45.14%를 들고 있다. 업계는 이 전무가 부친의 주식을 직접 물려받거나, 개인 회사인 이앤에스글로벌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택하더라도 세방㈜ 주가가 변수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한편 1952년 설립된 해군기술연구소에 뿌리를 둔 세방전지는 1978년 세방그룹으로 인수되며 지금의 사명을 가지게 됐다. 유가증권(코스피)시장에 상장한 것은 198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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