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현호 기자]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연간 300억원 수준의 출자 여력을 바탕으로 벤처투자 생태계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스타트업의 베이스캠프 역할에 머물지 않고 자본을 공급하는 실질적인 '큰 손'으로 보폭을 넓히면서다. 지난해 박영훈 대표가 취임한 이후 출자·운용·전략 전반에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박 대표가 민간 시절 보여준 투자 성적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은행권 자금 운용의 안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디캠프는 박 대표 취임 이후 유동성 공급자(LP)로서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난 7월 기술창업투자 프로그램인 팁스(TIPS) 운영사 자격을 반납한 것이다. 이는 자체 심사를 통해 속도감 있게 자금을 집행하고 티켓 파워를 키우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 지원금 매칭에 얽매이지 않고 시드 단계 이후 제품과 매출이 가시화되는 프리A 단계 등 기업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러한 공격적인 행보는 박 대표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박 대표는 삼성물산과 액센츄어,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을 거쳐 GS리테일에서 부사장(신사업추진실장)을 역임한 민간 투자 전문가다. 디캠프가 기존 센터장 체제에서 대표이사 체제로 격상된 이후 맞이한 첫 민간 출신 수장이기도 하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단순한 지원을 넘어 성장 가능성 높은 기업을 선별해 실질적인 투자를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디캠프는 은행권 출연금과 회수 재원 등 민간 자금을 활용해 성장사다리펀드, 은행권일자리펀드 등에 LP로 참여하고 있다. 박 대표는 여기에 더해 직접 투자 비중을 늘리며 금융권 자금을 벤처 영역으로 유입시키는 허브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KB·신한·하나 등 주요 금융지주가 디캠프의 출연기관인 만큼 정책 자금과 민간 자본을 연결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박 대표의 공격적인 투자 드라이브를 두고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가 과거 민간 기업 재직 시절 주도했던 굵직한 투자 건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민간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선구안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실제 박 대표가 GS리테일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단행한 투자는 현재까지도 재무적 부담으로 남아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달 플랫폼 '요기요' 인수다. GS리테일은 2021년 사모펀드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요기요를 인수했으나 시장 경쟁 심화로 기업가치가 급락했다. 인수 당시 3000억원이 넘었던 GS리테일의 요기요 지분 장부가는 지난해 말 기준 400억원대로 쪼그라들며 대규모 손상차손을 인식해야 했다.
물류 스타트업 '메쉬코리아(부릉)' 투자 역시 아픈 손가락으로 꼽힌다. GS리테일은 2021년 메쉬코리아 지분 약 19.5%를 인수하며 2대 주주에 올랐다. 퀵커머스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했으나 메쉬코리아가 자금난으로 회생 절차를 밟게 되며 투자금 회수에 난항을 겪었다. 이외에도 박 대표 주도로 인수한 푸드 스타트업 '쿠캣'과 반려동물 플랫폼 '펫프렌즈' 역시 인수 이후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며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권 공익 재단인 디캠프가 지나치게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띠는 것에 대한 신중론이 제기된다. KB·신한·하나 등 주요 금융그룹의 출연금으로 조성된 디캠프 자금은 일반 벤처캐피탈(VC)의 펀드와 달리 공공성을 띠고 있어 안정적인 운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민간 자본 운용에서 아쉬운 성과를 냈던 박 대표가 공익적 성격의 자금으로 고위험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박영훈 대표가 디캠프의 체질을 개선하고 역동성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과거 GS리테일 시절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현재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은행권 자금을 운용하는 만큼 단순한 외형 확장보다는 내실 있는 투자와 회수 전략을 통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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