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했지만, 정작 국내 거래소는 불투명한 제도에 묶여 그에 걸맞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거래소가 주춤하는 사이 글로벌 거래소들은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며 한국 투자자들을 흡수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바이낸스가 고팍스 인수를 승인받으며 '직접 상륙'이 현실이 됐다. 이번 기획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정체와 이용자 유출에서 시작된 균열이 어떻게 글로벌 플랫폼의 침투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국내 제도가 드러낸 허점을 짚어본다. 해외 거래소의 습격은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준우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금융위원회 규제와 제재를 받지만 법적으로 '금융업'이 아니다. 가상자산이 금융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해 '가상자산 매매·중개업'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제도권 밖의 규제를 받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용자 보호에만 방점을 두고 있어 업계는 감독은 받지만 보호는 받지 못하는 역차별을 받고 있다.
정부의 육성책도 없었다. 산업 초기인데 가상자산 사업은 벤처 업종에서 제외돼 정책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반면 고객예치금은 자산총액에 포함돼 대기업 규제를 받는 구조다.
최근 가상자산 사업자가 벤처 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지만 이들이 받는 역차별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는 증권시장에 상장하며 글로벌 자금을 흡수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증시 진입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유니콘에서 '대기업집단'으로…두나무·빗썸의 족쇄
공정거래위원회는 2022년 두나무를 대기업집단에 포함했다. 중간 단계인 공시대상기업집단 절차를 건너뛴 첫 사례였다. 공정위가 인정한 두나무의 당시 자산총액은 10조8225억원으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요건에 해당했다. 문제는 여기에 고객예치금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업계는 "가상자산 거래소는 고객예치금을 활용하는 '금융보험업'에 해당하므로 자산 총액에서 고객자산을 제외해야 한다"고 읍소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나무의 당시 고객예치금은 5조8120억원이었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대기업집단 지정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소 계열사 간 상호출자·순환출자·채무보증·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 규제는 피할 수 있었다. 산업이 막 성장하기 시작하던 시기 '유니콘기업'으로 평가됐어야 하는 기업이 갑작스레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돼 다양한 규제를 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두나무에 그치지 않고 벤처기업이나 다름없는 초기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유흥, 사행성 업종과 함께 '벤처 제외 업종'에 해당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업 초기 정책적인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을 여전히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지난 9월 관련법 개정으로 벤처기업 제한 업종으로 분류됐던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자산 매매·중개업'을 목록에서 삭제해 겨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됐다.
빗썸도 올해 5월 자산총액이 5조2100억원을 기록하며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고객예치금을 제외하면 자산총액은 약 3조7828억원으로 대기업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니콘 기업으로 지정된 코인거래소가 신사업 진출 등 기업 역량이 아닌 지배구조 개편과 상호출자 해소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라며 "이제 막 입학한 학생에게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무거운 가방을 메게 한 격"이라고 비판했다.
◆질주하는 코인베이스…규제와 싸우기 바쁜 K거래소
미국 최대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2021년 나스닥에 상장하며 업계 최초로 증시에 진입했다. 이후 대규모 공모 자금을 조달해 사업 확대와 기술 투자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
코인베이스는 전통 금융시장에 진입한 덕에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어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블록체인 업계만이 아닌 글로벌 주요 금융기관, 빅테크 기업과도 협업을 늘려갔다. JP모건과 신용카드 이용 가상자산 구매 지원을 추진하고 있고 구글과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 구축을 함께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도 협업해 삼성페이 '삼성월렛'에서 가상자산 거래를 지원할 계획이다.
실적도 우상향 중이다.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거래소는 올해 상반기 순수익 33억8041만달러(4조7951억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29억6761만달러(4조2096억원) 대비 약 14% 상승한 수치다.
반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상장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빗썸이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코스닥 IPO(기업공개)를 준비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잇따른 제제로 투자자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두나무는 나스닥 직상장을 준비했었다. 최근에는 네이버파이낸셜과 '포괄적 주식교환' 논의가 진행되며 합병 법인의 나스닥 상장 추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FIU(금융정보분석원)의 AML(자금세탁방지) 절차 미흡 관련 소송으로 방해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두나무와 네이버파이낸셜의 시너지로 나스닥 고밸류 상장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FIU가 AML 문제로 딴지를 건 만큼 과징금이 아닌 벌금 부과가 결정될 경우 컴플라이언스를 중시하는 나스닥 상장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고 밝혔다.
코인원도 금융당국과 씨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9월 코인원이 최종 승소한 사건을 문제 삼아 차명훈 의장과 코인원 본사 압수수색을 검찰에 요청했다. 이에 언론에 코인원에 큰 리스크가 남아 있는 것처럼 보도가 됐고 코인원은 급하게 공식 입장을 냈다.
고팍스는 대주주 바이낸스가 이사회에 진입하는 데 무려 2년7개월이나 걸렸다. FIU가 등기임원 변경 수리를 45일 내 완료해야 하지만 바이낸스의 AML을 문제 삼은 탓이다.
바이낸스가 '고파이 사태' 피해자 가상자산을 전액 보상해 주겠다고 밝혔음에도 FIU가 이를 허가해 주지 않으면서 피해가 커졌다. 최근 몇 년간 가상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미상환 가상자산 가치가 약 1400억원까지 커지며 바이낸스의 재무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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