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퇴직연금 제도가 2005년 12월 처음 시행된 이후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적립금 기준 400조원을 넘었고 2040년 10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빠르게 성장 중인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다양한 금융 분야의 쟁쟁한 기업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개별 금융사들이 퇴직연금 사업을 어떻게 진행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이규연 기자] 'IB(투자은행) 명가'로 불리는 한국투자증권은 리테일(개인금융)부문에서 몸집과 달리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퇴직연금 분야의 경우 일찌감치 시장에 뛰어든 경험을 바탕으로 선두 미래에셋증권을 바짝 쫓고 있다. 특히 지난해 시행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의 수혜를 입었다는 평가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퇴직연금사업자인 국내 증권사 12곳을 통틀어 전체 적립금 기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2024년 말 퇴직연금(DB‧DC‧개인형 IRP) 적립금은 15조8148억원으로 미래에셋증권(29조1946억원)과 현대차증권(17조5152억원) 다음 순이다.
현대차증권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77%가량을 현대차그룹 계열사로부터 받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투자증권이 일반 개인고객 대상으로 미래에셋증권에 이어 사실상 2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2024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같은 해 9월 말과 비교해 1조3324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퇴직연금 적립금이 1조원 이상 증가한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 외에는 미래에셋증권(1조8190억원)과 삼성증권(1조2746억원)뿐이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이 2024년 10월 31일에 시행된 점을 고려하면 한국투자증권이 이 제도 도입의 수혜를 상당히 입었다고 볼 수 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은 기존 금융상품 해지 없이 다른 금융사로 퇴직연금을 옮길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개인고객이 은행에 뒀던 퇴직연금을 좀 더 수익률 높은 증권사로 옮길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리고 국내 증권사 14곳의 퇴직연금 적립금이 지난해 4분기에만 7조3927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사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규모의 퇴직연금 적립금 증가를 나타냈다. 선두인 미래에셋증권이 2005년부터 퇴직연금 사업을 진행한 전통의 강호인데다 3위 삼성증권은 WM(자산관리) 명가로 꼽히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투자증권의 선전은 더욱 돋보인다.
한국투자증권은 2008년 퇴직연금본부를 신설하면서 관련 사업에 기지개를 일찌감치 켰다. 그 뒤에도 퇴직연금 관련 조직을 꾸준히 키워왔다. 2024년 말 조직개편에서도 퇴직연금본부를 퇴직연금1‧2본부 및 퇴직연금운영본부로 확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고객 편의도 강화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3년 10월 국내 증권사 최초로 인터넷전문은행 토스뱅크와 개인형 IRP(개인형 퇴직연금) 계좌 개설 제휴를 체결했다. 고객이 원하는 ETF(상장지수펀드)를 매달 자동 매수하는 서비스도 2024년 8월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역대 대표들 역시 퇴직연금 사업에 일가견이 있다. 정일문 전 대표는 한국투자증권에서 기업금융본부장 및 퇴직연금본부장을 역임했다. 김성환 현 대표는 IB그룹장 출신인데 당시 IB그룹 산하에 퇴직연금본부도 포함됐다.

한국투자증권의 퇴직연금 사업에서 굳이 아쉬운 부분을 따지자면 장기 수익률을 들 수 있다. 증권사의 퇴직연금 사업은 원리금 보장‧원리금 비보장 및 DB형(확정급여형)‧DC형(확정기여형)‧개인형 IRP(개인형 퇴직연금) 유형으로 각각 나뉜다.
DB형 퇴직연금은 적립금을 사용자인 기업이 운용한다. 반면 DC형은 기업이 임금총액 일부를 퇴직연금 계좌에 적립하면 근로자가 운용하는 방식이다. 개인형 IRP는 개인이 퇴직급여를 적립해 직접 운용한다.
원리금 비보장형의 경우 원금을 보장하지 않지만 보다 높은 수익률을 위해 공격적 운용에 나서는 만큼 증권사가 강점을 지닌다. 더불어 근로자가 투자상품을 직접 고를 수 있는 DC형 및 개인형 IRP 역시 증권사가 유리한 유형으로 꼽힌다.
한국투자증권에서 내놓은 원리금 비보장형 퇴직연금 상품의 2024년 말 기준 최근 10년 수익률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DB형 3.29%, DC형 3.03%, 개인형 IRP 3.28%다. 퇴직연금 사업자인 국내 증권사 14곳 중 수익률 순위는 DB형 3위, DC형 10위, 개인형 IRP 9위다.
퇴직연금은 보통 가입자의 은퇴 후 노후를 대비하는 상품이다. 이를 고려하면 장기 수익률 측면에서 한국투자증권은 DB형에 강점을 보이는 반면 DC형과 개인형 IRP 수익률은 높지 않은 편이다. DC형‧개인형 IRP 퇴직연금 시장이 성장 중인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같은 기준을 최근 1년 수익률에 적용하면 DC형은 9.82%(5위), 개인형 IRP는 10.54%(5위)로 양호한 편이다. 한국투자증권이 이런 추세를 이어간다면 향후 장기 수익률 역시 지금보다는 높아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2025년에는 퇴직연금 계좌 내 RA(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일임형 상품 및 장내채권 직접매매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라며 "고객별로 다른 은퇴 시점과 투자 목표를 고려해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연금계좌 수익률 제고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