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서재원 기자] SK온의 기업공개(IPO)를 겨냥해 조단위 투자를 단행한 재무적투자자(FI)들 사이에서 불안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은 투자 당시 SK온이 최대 2028년까지 상장하는 조건으로 콜앤드래그 조항을 설정했다.
우려스러운 점은 SK그룹이 지난해 11번가의 콜옵션을 거부하면서 투자자 신뢰를 저버렸다는 사실이다. SK온의 FI들은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SK온은 지난 2021년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물적 분할한 이후 곧바로 프리IPO를 추진했다. 가장 먼저 투자 물꼬를 튼 건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이하 한투PE 컨소시엄)다. 한투PE 컨소시엄은 두 차례에 걸쳐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스텔라인베스트먼트도 7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펀드를 조성해 별도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온의 성장성을 눈여겨 본 해외 투자자도 다수 참여했다. 지난해 5월 MBK파트너스, 블랙록, 힐하우스캐피탈, 카타르투자청 등으로 이뤄진 MBK컨소시엄이 약 1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 국립은행 자회사인 SNB캐피탈도 약 1900억을 투입했다. 프리IPO 라운드에서 SK온이 FI로부터 조달한 누적 투자액은 3조원에 육박한다.
이들 FI는 SK온의 전환우선주(CPS)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과 콜앤드래그 계약을 맺었다. SK이노베이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온이 약정기한(2026년+2년)까지 내부수익률(IRR) 7.5% 이상 등의 조건을 충족하는 상장을 하지 못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FI 지분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해야 한다. 콜옵션을 포기할 경우 FI는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의 지분까지 함께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요구권(드래그얼롱)을 발동할 수 있다.
FI의 입장에서는 SK그룹에 대한 신뢰를 갖고 대규모 투자에 나선 셈이다. 콜옵션의 경우 풋옵션과 다르게 강제성이 없다. 이에 시장 악화로 SK온의 상장이 지연되더라도 드래그얼롱을 발동하기 전 그룹 차원에서 콜옵션을 행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콜앤드래그의 경우 풋옵션과 다르게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계상되는 만큼 SK그룹의 편의를 봐준 것이기도 하다.
SK온의 IPO 약정 기한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FI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콜옵션 행사에 대한 불안의 목소리가 세어나오고 있다. 지난해 SK스퀘어가 자회사 11번가의 콜옵션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간 암묵적인 신뢰로 받아 들여지던 드래그얼롱 발동 전 최대주주가 콜옵션을 행사하는 공식에 금이 간 상황이다.
지난 2018년 11번가는 H&Q코리아 등으로부터 5000억원을 투자 받았다. 당시 투자자들은 투자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11번가의 5년 내 상장을 조건으로 콜앤드래그 조항을 삽입했다. 하지만 지난해 11번가가 IPO에 실패하자 SK스퀘어는 콜옵션 행사를 거부하며 사실상 11번가를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온 역시 투자를 유치할 당시 IPO를 조건으로 콜앤드래그 조항을 설정했다"며 "만약 약정 시기까지 상장을 못할 경우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지난해 SK그룹이 11번가 콜옵션을 거부한 전례가 있는 만큼 벌써부터 SK온 투자자들 사이에서 콜옵션 포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일단 업계에서는 SK그룹이 콜옵션을 거부하며 SK온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 11번가와 다르게 SK온은 일찍이 그룹 차원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하며 투자활동에만 수십조원을 쏟아 붇고 있기 때문이다. SK온의 투자활동현금흐름(연결기준)을 살펴보면 ▲2021년 1조2252억원 ▲2022년 4조6201억원 ▲10조5316억원 을 각각 지출했다. 꾸준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매년 조단위 투자를 진행했다.
최근 SK온의 실적이 깜짝 반등한 점도 FI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올해 3분기 SK온의 영업이익은 240억원을 기록하며 첫 분기 흑자를 달성했다. 올해 2분기 4601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은 것을 감안하면 불과 1개 분기 만에 영업이익이 4841억원 개선됐다. 그간 약점으로 꼽혔던 수익성을 개선한 만큼 흑자 기조를 이어갈 경우 약정 기한 내 IPO에 나설 가능성도 커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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