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성희 기자] 우리금융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우리은행은 과거 1998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을 통해 탄생했다. 당시 흡수합병이 아닌 대등합병으로 통합하다보니 두 은행 출신 간의 계파 갈등은 우리은행은 물론 우리금융 전반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우리금융 회장이 '자회사 임원 인사 사전합의제'라는 제도를 통해 자회사 대표이사가 아닌 상무 이상 임원까지 인사권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 같은 조직문화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계파 갈등의 기계적 봉합을 위해, 또는 주력 계열사인 은행에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인사권을 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금융지주의 경우 애초에 자회사의 독립적인 인사권을 인정해 왔다는 점과 반대되는 행보이기도 하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지주가 회장의 자회사 임원 인사 사전 합의제를 폐지하며 임종룡 회장이 약속한 회장 권한 축소 행보에 나섰다.
우리금융은 지난주 '자회사 등 경영관리 규정' 지침을 개정, 자회사 대표가 임원을 선임할 때 회장과 미리 협의하는 절차를 없앴다. 지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우리금융의 자회사 임원 인사 사전 합의제가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데 따른 조치다.
우리금융이 자회사 임원 인사 사전합의제를 폐지하면서 앞으로 임 회장은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 의장으로서 자회사 대표 선임에만 관여하게 된다.
임 회장은 지난 10일 국감에 출석해 "회장 권한과 기능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자회사 임원 인사권을 내려놓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부당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주 회장의 가진 제왕적 권한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권한이 결국 인사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임 회장도 자회사 임원 사전합의제가 이번 사건의 한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해당 제도의 폐지를 약속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자회사 임원 사전합의제도가 우리금융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제도였다는 점이다. 우리금융을 제외한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사의 경우 자회사 임원 선임에 회장의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제도가 없다.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2020년 자회사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자회사 CEO의 책임경영을 지원하기 위해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가 담당해 온 자회사의 경영진 후보 인선 기준 및 심의 관련 기능을 자회사 이사회가 담당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는 이사회 내 위원회에 편입해 위원회 운영의 투명성을 더욱 강화했다"며 "우리금융을 제외한 대부분 지주에서 비슷한 취지의 움직임이 대부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우리금융이 자회사 임원 사전합의제를 고수한 이유는 계파갈등이 심한 우리금융 특성상 회장이 인사권을 쥐고 있어야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리금융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합병 이후 두 은행 출신이 반목하는 '한 지붕 두 가족' 형태의 기형적인 구조가 지속돼 왔다.
이에 2019년 우리금융지주 재출범 당시 회장이 자회사 임원들에 대한 인사권을 가져야 두 파벌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사 잡음을 지울 수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과거 임원 인사 과정에서의 불균형은 계파 갈등을 촉발시키는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2016년에는 파벌 싸움이 채용비리 폭로전의 시발점이 된 사례도 있다. 다만 이 제도가 회장에게 과도한 권한을 집중시키면서 내부통제 실패와 같은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그룹의 이익을 90% 이상 책임지고 있는 은행에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것만큼 효과가 큰 것이 없다"며 "이번 자회사 임원 사전합의제 폐지를 통한 회장 권한 축소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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