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윤기쁨 기자] 법무법인 태평양의 정년 연장안이 가결 한 달 만에 철회됐다. 이번 사안은 단순 인사 제도 개편을 넘어 경영진의 도덕성 논란과 세대 갈등이 맞물리며 내부 진통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특히 이준기 대표가 본인의 은퇴 시점에 맞춰 정년 규정 변경을 시도했다는 사익 추구 의혹과 주력 분야인 M&A 자문 실적마저 부진을 이어가며 리더십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태평양은 최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보낸 서안을 통해 65세 정년 연장안 철회를 공식화했다. 태평양은 1980년 창립 이후 정년 65세를 유지해왔지만 2009년 시니어 용퇴 유도와 인사 적체 해소, 주니어 파트너 승진 기회 확대를 위해 이를 60세로 단축한 바 있다. 하지만 2024년 취임한 이준기 대표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년 복원을 추진하고 지난달 파트너 투표에서 해당 안건을 통과시키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주니어 파트너들의 강력한 반발과 절차적 정당성 논란 등 내부 비판이 확산되자 결국 승인 한 달 만에 이를 백지화했다. 민감한 인사 관련 사안을 충분한 소통 없이 추진하다 여론에 밀려 번복하면서 이 대표의 불안정한 리더십이 구성원 간 내홍을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부 반발의 핵심은 이번 연장안이 이준기 대표의 개인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1966년생인 이 대표는 기존 정년 규정에 따라 올해 만 60세로 정년 은퇴를 앞둔 시점이다. 조직 운영을 책임지는 대표가 본인의 퇴임 시기에 맞춰 정년 규정을 5년 연장하려 했다는 의혹은 리더십 도덕성에 타격을 입혔다. 과거 주니어들을 위해 정년을 단축했던 선배들이 본인의 은퇴 시점에 맞춰 제도를 복원하려 한다는 냉소가 내부에서도 확산됐다. 특히 핵심 인재 경쟁력이 약화되고 실적 반등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표가 정년 연장에 몰두했다는 사실이 구성원들의 반발을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조직 내홍은 대외적 위상 하락 지표와 맞물리며 심화하고 있다. 딜사이트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태평양은 M&A 자문 실적 6위에 그치며 하락세를 보였다. 론스타 ISDS 승소 등 송무와 국제중재 부문의 성과로 전체 매출 부문에서는 업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로펌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M&A 시장 지배력은 김앤장·광장 등 부동의 상위권은 물론 세종·율촌·화우 등 경쟁사들에 밀려 상위권에서 완전히 이탈했다. 연초에는 어피니티의 SK렌터카 및 롯데렌탈 기업결합심사 과정에서 불거진 실무 역량 논란과 대형 딜 레퍼런스 실패로 전문성에도 의구심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어피니티는 자문사를 태평양에서 법무법인 세종으로 교체한 상태다.
이준기 대표는 1996년 입사 이후 국내 산업 지형을 바꾼 굵직한 M&A 사건들을 진두지휘해 왔다. 대표적으로 삼성그룹이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등 방산 및 화학 계열사 4곳을 한화그룹에 일괄 매각한 삼성-한화 빅딜이 꼽힌다. 또한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하에 있던 금호타이어를 중국 타이어 기업 더블스타가 인수할 때에도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태평양의 전성기를 견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이력과 달리 최근 M&A 부문의 경쟁력 저하가 수치로 증명되면서 이 대표의 경영 리더십과 실무 역량에 대한 책임론도 커지는 상황이다.
현재 태평양의 정년 연장안은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이 과정에서 노출된 세대 간 갈등과 훼손된 리더십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M&A 전문가로 명성을 쌓아온 이준기 대표가 내부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하고, 본인의 정년 시점과 맞물린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대내외 명성에 상처를 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실적 반등을 위한 추진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태평양은 당분간 내홍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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