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기령 기자] 금융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은행들의 자금이 벤처펀드로 유입된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한 150조원 국민성장펀드 출범을 앞두고 자본규제 완화가 모험자본 시장의 물길을 바꿀 거란 분석이다.
정종호 한국성장금융 실장은 9일 딜사이트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코스닥 3000 시대, 혁신자본의 선순환 구조를 묻다'라는 주제로 공동 주최한 VC포럼에서 국민성장펀드 시대의 자본규제 개선과 VC 시사점에 대해 발표했다. 정 실장은 "국민성장펀드를 계기로 은행 자금이 모험자본 시장에 참여할 구조적 창구가 열렸다"고 강조했다.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가운데 35조원은 간접투자 형태로 집행된다. 향후 5년간 연간 약 7조원씩 시장에 투입된다. 기존 뉴딜·혁신성장펀드가 연간 3~4조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가량 커졌다. 특히 AI와 반도체, 모빌리티, 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에 집중 투자된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
문제는 민간 자본의 참여다. 정부 재정만으로는 대규모 펀드 조성이 어려운 만큼 은행과 연기금 등 민간 LP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정 실장은 "현행 규정에서는 은행이 벤처펀드에 투자할 경우 위험가중자산(RWA)이 400% 적용된다"며 "100억원을 출자하면 400억원으로 인식돼 자기자본을 크게 소모하게 되기 때문에 사실상 투자 유인이 없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벤처투자보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일반 기업대출이 훨씬 유리한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 RWA 기준을 완화하는 등 자본규제 합리화에 나섰다. 주식 투자에 대한 기본 위험가중치를 기존 400%에서 250%로 낮추고 단기 매매 목적 비상장주식 등 일부 고위험 자산에만 400%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국제 규제인 바젤 기준과의 정합성을 맞췄다. 펀드 투자에 대한 규제도 함께 손질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정책성 펀드에 대해서는 위험가중치 100% 특례를 적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정 실장은 "특례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은 정부의 보조 수준"이라며 "정부 보조와 감독 요건을 충족할 경우 위험가중치 100% 특례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시행세칙을 개정한 것도 규제 불확실성 해소의 일환이다. '투기적 거래 목적' 비상장주식에 한해 400%를 적용하도록 기준을 명확히 하면서 규제 불확실성을 줄였다. 다만 업력 5년 미만 기업 투자 등 일부 영역에서는 여전히 높은 규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이런 변화는 VC 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정 실장은 우선 국민성장펀드 요건을 충족하는 펀드 구조 설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보조와 감독 요건을 선제적으로 반영할 경우 은행 자금 유입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금이나 재정이 앵커로 확보될 경우 적어도 올해는 펀드레이징이 한층 수월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성장금융 역시 재정 모펀드를 운용하고 다양한 매칭 구조의 펀드를 준비하며 VC 업계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약정서 기반 접근법을 활용한 구조 설계 필요성도 언급했다. 투자 대상 자산을 정책 요건에 맞게 제한할 경우 미집행 약정금액까지 위험가중치 100% 적용이 가능해 은행 입장에서 투자 매력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 실장은 "약정서 기반 접근법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면서 100% 특례 적용이 가능한 펀드 설계도 현실화할 수 있다"며 "은행 등 출자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검토할 만한 구조인 만큼 운용사들도 이에 맞춘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본규제는 단순한 제약이 아니라 시장의 자금 흐름을 바꾸는 변수"라며 "규제 변화의 방향에 맞춰 펀드 구조를 설계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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