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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벤처캐피탈…모험자본 보단 그룹 구매본부
이준우 기자
2026.04.15 07:00:20
① 6대 계열사 출자로 급격한 성장…혁신 생태계와 괴리된 그룹 조달창구 역할 지적
이 기사는 2026년 04월 14일 10시 33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모험자본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부의 기조에 맞춰 기업형 벤처캐피탈(CVC)들도 한 단계 성장할 전망이다. CVC가 그룹의 전략투자 플랫폼으로 실제 기능하고 있는 지와 투자 집행 후 실제 대기업과의 협업이나 현실 사업화, 투자금 회수의 실질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는가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이 시각물은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제미나이 나노 바나나2로 생성된 이미지 입니다.

[딜사이트 이준우 기자] 국내 1위 대기업 집단 삼성은 그 브랜드만으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삼성이 만든 CVC 삼성벤처투자가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삼성벤처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은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단순한 자금 조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일단 국내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 그룹의 공급망에 공식적으로 편입됐다는 일종의 '입도선매' 보증수표를 얻는 효과가 생긴다. 다른 하우스들이 삼성벤처의 포트폴리오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심사역들을 영입하려고 줄을 선 것도 사실이다. 삼성벤처의 투자 리스트는 곧 삼성이 낙점한 미래 협력사 명단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삼성벤처는 올해 1분기 SVIC 75호(300억원)와 77호(220억원) 그리고 78호(500억원) 등 3개 벤처 펀드 결성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4분기 3000억원 규모의 대형 펀드인 SVIC 76호를 결성한 데 이어 추가 투자 재원 확보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급등하자 선제적인 자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결성되는 펀드들은 모두 삼성 계열사들이 자금을 대고 삼성벤처가 운용하는 신기술사업투자조합 형태다. 75호는 삼성카드가 285억원을 출자했고 77호는 에스원이 198억원을 맡았다. 78호는 삼성디스플레이가 495억원을 책임진다. 특히 지난해 말 결성된 76호 펀드에는 삼성전자가 2000억원을 투입하며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삼성SDI와 삼성전기 등 주요 계열사가 총동원된 모양새다. 모두 지배구조 최상단에 삼성물산이 자리한 핵심 계열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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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삼성벤처의 운용자산(AUM)은 약 3조6000억원대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이는 국내 VC 업계 1위인 한국투자파트너스(3조8017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민간 자금 모집에 사활을 거는 일반 VC들과 달리 삼성벤처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자금줄 덕분에 타 하우스 대비 비교적 평탄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삼성벤처의 투자 결정은 상당 부분 삼성 계열사와의 거래 관계에 기반한다. 삼성물산이 2023년 삼성벤처를 통해 건설로봇 기업 로보콘을 종속회사로 편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과거 이재용 회장이 추진했던 인터넷 사업 e삼성에 지분을 투자했던 이력 역시 하우스의 독립성보다는 그룹의 특수 목적 수행에 무게가 실렸음을 보여준다. 스타트업의 자본력이나 기술력보다는 삼성 그룹과의 시너지 여부가 투자 1순위 조건이 되는 구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VC 업계에서는 되려 삼성벤처 출신 심사역들이 최고의 영입 대상이 된다. 이들이 실무 과정에서 접한 삼성벤처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타 하우스 입장에서 실패 확률을 줄여주는 '황금 명단'이기 때문이다. 삼성벤처가 자금을 집행한 기업은 삼성 계열사로부터 후속 투자를 받거나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일반 스타트업과 달리 삼성벤처의 포트폴리오는 사실상 삼성 생태계의 보호 아래 놓이게 되며 이는 곧 투자 회수 안정성으로 이어진다.


특히 코로나 이후 삼성벤처 소속 심사역들이 타 하우스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이들을 영입하기 위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삼성벤처에서 딜 소싱과 심사를 담당했던 인력들은 단순한 투자 기법을 넘어 삼성이 어떤 기술 분야에 목말라 하는 지 그리고 어떤 협력사를 눈여겨보고 있는 지에 대한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인물들이다. 경쟁 하우스들은 이들을 통해 이른바 삼성픽 유망 기업들을 선점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삼성벤처를 보는 업계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모험자본 본연의 역할보다는 그룹의 전략적 투자(SI)를 수행하는 '거수기' 역할에 치중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시장의 의문은 삼성벤처가 과연 진정한 의미의 모험자본인지에 쏠린다. 삼성 그룹이 미리 발굴하고 검증한 포트폴리오에 계열사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은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라는 벤처 투자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그룹의 조달 부서나 외주 관리 조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이사직 역시 삼성 주요 인사가 거쳐 가는 정거장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짙어 투자 전문성보다는 그룹의 정무적 판단이 우선시 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인공지능 반도체 등 핵심 전략 산업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삼성벤처의 역할은 더욱 비대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2000억원을 단독 출자한 76호 펀드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정보의 독점과 계열사 지원 사격에 의존한 성장이 지속될수록 민간 벤처 생태계와의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벤처가 찍은 기업만이 살아남는 구조는 자칫 시장의 창의적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VC 업계 관계자는 "삼성벤처투자는 시장의 불확실성에 베팅하는 모험자본이라기보다 그룹의 기술 로드맵을 완성하기 위한 전략적 보완재에 가깝다"며 "계열사 공급망 안에서 확실한 실적을 담보로 투자를 하는 만큼 벤처 생태계 특유의 역동성 및 리스크관리와는 궤가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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