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가시권에 들어서면서 디지털 금융 주도권을 둘러싼 은행권의 전략 지형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발행 주체와 초기 생태계 선점이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자, 시중은행들은 단독 대응 대신 빅테크·가상자산 거래소와의 전략적 연대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현재 은행권의 대응 전략은 크게 ▲거래소 연계형 ▲플랫폼 결합형 ▲결제·유통망 선점형 ▲기업금융 중심형으로 갈리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에 편입될 경우, 이들 전략 중 어느 축이 초기 시장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향후 디지털 금융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국내 최대 디지털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블록체인 기반 금융서비스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이후를 대비한 기술·인프라 협력 차원이라는 평가다.
양 사는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 프로세스 구축을 비롯해 외국환 업무 전반에 대한 신기술 적용, 하나머니 서비스 고도화를 공동 추진한다. 내년 1분기 중에는 하나은행 본점과 해외 법인 간 송금 프로세스에 블록체인을 우선 도입할 계획이다. 두나무는 자체 블록체인인 '기와체인' 기술을 하나금융에 공유하며 인프라 구축을 지원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약을 단순한 기술 제휴를 넘어 향후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주도권 경쟁의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두나무가 네이버파이낸셜과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의 기업결합을 추진 중인 만큼, 하나금융이 네이버-두나무 간 결합 흐름 속에서 '3각 동맹'의 한 축으로 편입될 가능성에도 이목이 쏠린다. 두나무가 추진 중인 네이버파이낸셜과의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 합병이 성사될 경우 네이버 생태계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이 업비트 거래 체계와 연동될 수 있어 초기 시장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네이버와 두나무의 결합만으로도 시장 파급력이 상당한데, 여기에 하나금융까지 참여하는 구도가 형성된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초기 시장에서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하나은행은 이와 별도로 IBK기업은행과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공동 발행도 검토 중이다. 초기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기업 해외송금과 무역결제 등 B2B 영역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이다. 외환에 강점을 가진 하나은행과 중소기업 금융에 특화된 기업은행이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빅테크와의 연계를 중심으로 대응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네이버페이와의 협업 기반이 가장 탄탄한 은행으로 꼽힌다. 이미 예·적금, 결제, 카드 등 다양한 상품을 공동 개발해 왔고, 신한 네이버페이 체크·신용카드 등 사용자 기반이 검증된 서비스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나설 경우 네이버페이의 방대한 이용자 풀을 빠르게 흡수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리은행은 삼성전자의 간편결제 서비스 '삼성월렛 머니·포인트' 운영 위탁을 확보하며 디지털자산 사업 확장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삼성월렛 협업 이후 "결제와 디지털자산 생태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 우리은행은 시중은행 중 최초로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를 표기하는 등 디지털자산 관련 기반을 선제적으로 다지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진영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카카오페이와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스테이블코인 대응 전략을 마련 중이다. 그룹 통합 플랫폼을 기반으로 사업 모델을 검토하고 있으며, 실명계좌 운영 경험과 디지털화폐 실험 이력을 바탕으로 핵심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토스(비바리퍼블리카) 역시 빗썸과 스테이블코인 발행 가능성을 포함한 전략적 협력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토스의 대규모 사용자 기반과 지급결제 경쟁력, 빗썸의 거래·정산 인프라가 결합할 경우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는 발행권 확보도 중요하지만 어떤 생태계를 구축해 얼마나 빠르게 실사용을 확보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은행-빅테크-거래소 간 우군 확보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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