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밸류체인'을 구축하며 대기업부터 소부장까지 아우르는 동반 성장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개별 기업 역량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협력 체계를 앞세워 기술 돌파구를 빠르게 마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국가적 반도체 밸류체인을 구성하고 있어 국내 반도체 업계에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들이 아직 실행하지 못한 '기업 간 동반 성장 모델'을 화웨이를 중심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CXMT 등 중국 메모리 기업들 자체 경쟁력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어 위기의식이 커지는 시점이다.
밸류체인의 정중앙에 위치한 화웨이는 자체 운영체제(OS)와 AI 인프라를 보유한 데 이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 주도로 반도체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장전기술, 북방화창 등 자국 반도체 협력사들을 아우르며 설계·제조·패키징 등 밸류체인 전반을 이끌고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해야 할 일을 중국에서는 화웨이가 전담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조가 가능한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이 있다. 중국은 반도체 육성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며, 그중 화웨이가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화웨이는 올해 연구개발(R&D)에만 1200억위안(약 22조원)을 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사와의 동반 성장까지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반도체 장비 산업에서도 나우라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나우라는 중국 반도체 어계 시가총액 4위 기업으로, '장비 자국화' 정책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장비 제조에 필요한 부품 역시 자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관리해, 지난해 기준 국산화율 70%대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상반기 나우라는 매출 161억위안(3조1612억원), 영업이익 33억위안(6479억원)을 기록하며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9%, 2%가량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세에 힘입어 고종횡비 비아(Via) 식각 기술 등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 장비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반도체 업계와 정치권에서 이를 의식하면서, 대기업부터 소부장 협력사까지 한데 모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국가 주도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실제로 관련 논의와 준비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뚜렷하지 않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메모리 기업들 자체 경쟁력도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HBM 시장까지 넘보면서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는 최근 HBM3 샘플 개발을 마치고 양산을 위한 장비 발주에 나선 바 있다. 현재 중국 허페이시에 두 개의 D램 생산라인을 운영 중인 CXMT는 이곳에 HBM 양산 라인을 새로 구축하고, 오는 2027년에는 HBM3E 양산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CXMT의 캐파(생산 능력) 확대 속도가 워낙 빨라, 향후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과 수율을 확보하게 되면 글로벌 공급망에서 강력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회사 역시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등에 업고 단기적인 수익성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CXMT는 비상장사인 만큼 정확한 재무 상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장조사업체 QY리서치의 추정치에 따르면 ▲2023년 90억위안(영업이익 1조7388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65억위안(3조1879억원)으로 급성장한 것으로 파악된다.
외형은 지속 확대되고 있지만,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CXMT는 수율 부진이 발목을 잡고 있어 실제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 50%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최대 낸드플래시 기업 YMTC도 경쟁 구도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YMTC는 기존 낸드 사업에서 한발 더 나아가 HBM을 포함한 D램 제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재는 고급 반도체 패키징 기술인 실리콘 관통 전극(TSV) 공정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우한에 건설 중인 신규 반도체 생산 라인의 일부를 D램 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업계 다른 관계자는 "중국은 미국 정부의 압박을 겪으면서 AI 반도체 칩 자립화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며 "CXMT가 최근 구형 D램인 DDR4 생산을 조기에 중단하고 DDR5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흐름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메모리 기업들이 각자도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기술적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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