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삼성전자가 2분기 재고자산 평가 충당금으로 6조원대 규모의 금액을 인식했다. 이는 2023년 반도체 불황 때 발생한 7조원대 충당금 다음으로 높은 금액이다. 비용으로 인식된 재고자산평가손실금이 커지면서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에 큰 타격을 입었다. 다만 충당금 규모가 커진 만큼 3분기부터 메모리반도체 가격상승으로 인한 환입금 규모가 커지면서 실적이 크게 급등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최근 D램과 낸드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메모리 재고 가격이 오르면 3분기에 수조원대 재평손 환입금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 리스크 해소에 맞춰 3분기에 실적을 급격히 끌어 올려 극적인 효과를 노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재고자산은 51조374억원으로, 전년 동기 재고자산인 55조5666억원보다 4조5292억원 줄었다. 사업부별로 봤을 때에는 반도체(DS) 사업부의 재고자산이 크게 줄었다. 삼성전자의 사업부문별 재고자산 보유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DS사업부의 재고자산은 27조8424억원으로, 전년 동기(32조3308억원)보다 8.46% 줄었다.
실질적인 반도체 재고라 볼 수 있는 반제품과 재공품 재고자산도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연결 기준 삼성전자의 올해 상반기 반제품·재공품 재고자산 규모는 22조3380억원으로, 전년 동기 23조3833억원보다 4.47% 감소했다. 반도체는 복잡한 공정과 긴 생산 주기를 갖고 있어 라인에 머무는 시간이 길기에 제품 완성까지 중간 단계를 거치는 중인 반제품과 재공품 규모가 많다.
이에 따라 재고자산 회전율도 늘어났다. 올해 상반기 재고자산 회전율은 3.9회로 지난해 연말 3.6회보다 증가했다. 이 회사의 최근 5년간 재고자산 회전율은 ▲2020년 4.9회 ▲2021년 3.5회 ▲2022년 4.1회 ▲2024년 3.6회로 점차 감소 추세였다.
회사 측은 DDR4 등 범용 D램 판매 확대와 서버 솔리드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수요 증가에 따른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D램의 경우 레거시 제품의 단기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한편 HBM3E, LPDDR5x, GDDR7 같은 선단 제품 판매 확대에 주력했다. 그 결과 재고가 정상 수준 이하까지 감소했다"고 했다. 이어 "낸드는 서버 SSD 수요 개선세에 적극 대응하고 전 분기보다 비트그로스(bit growth)가 증가하며 가이던스를 상회했다. 그 결과 재고 수준은 크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재고자산은 줄었지만 재고평가충당금은 늘었다.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재고자산 평가충당금은 6조4534억원으로 전년 동기 3조9994억원보다 2조4539억원 증가했다. 이는 최근 5년 중 반도체 시장 불황이었던 2023년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규모다. 삼성전자의 재고자산 평가충당금은 연말 기준 ▲2024년 4조9829억원 ▲2023년 7조3961억원 ▲2022년 4조3190억원 ▲2021년 1조8929억원 ▲2020년 1조3244억원이다.
재고자산 평가충당금은 기업이 보유한 재고가 시장 상황에 따라 하락했을 때를 대비해 그 차이를 미리 손실로 회계 처리하는 계정이다. 재고자산평가손실이 발생할 경우 이를 매출원가로 처리한다. 이에 따라 재고자산평가손실이 늘어날수록 매출원가가 상승하고, 이는 곧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진다. 그러나 향후 재고자산의 가격이 오르면 기업은 충당금 환입(제거)을 통해 예전에 미리 손실로 반영한 부분을 회계 처리로 되돌린다. 그 결과, 매출원가에서 미리 반영한 손실이 제거돼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한다.
재고자산 평가 충당금이 크게 늘어나면서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4조6761억원으로 전년 동기 10조4438억원보다 55% 감소했다. 반도체 부문의 경우 영업이익 4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8000억원 감소폭이 매우 컸다.
다만 재고자산의 대부분이 고객사 인증을 받지 못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재고로 추정되는 만큼 털어내야 할 비용이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실적이 예상보다 더 저조했던 이유는 재고자산 평가충당금을 일찍 인식했기 때문"이라며 "남은 재고의 질적 부담, 특히 인증이 지연된 HBM 물량 등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비용을 한 번에 털어낸 만큼 하반기에는 실적과 주가 모두 반등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 셈"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2분기 재고자산평가손실 규모를 크게 설정한 것을 두고 3분기 실적 반전 효과를 거두기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D램과 낸드 가격이 상승세인 만큼 3분기에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의 가격이 오를 경우 재고자산평가손실을 환입하면 막대한 영업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는 회계상 처리인 만큼 실제 실적보다 영업이익이 커 보이는 '착시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HBM을 포함한 D램 가격은 3분기에 2분기 대비 10~15%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범용 D램인 DDR4의 계약 가격은 40~50%까지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낸드의 경우 주요 제조 업체들이 감산에 나서면서 평균 계약 가격이 10~15%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3분기에 삼성전자가 보유한 재고자산의 가격이 오르면 환입 규모도 덩달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다는점도 주목된다. 2분기에 회계 처리를 보수적으로 시행해 재고평가자산손실을 크게 잡아둔 후 이 회장 무죄에 맞춰 3분기 재고자산 가격 상승을 반영한다면 막대한 실적 반등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편 시장에서 하반기부터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상황이 개선돼 3분기 실적이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최근 테슬라와 22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후 애플과 이미지센서(CIS)의 경우 애플 아이폰 공급망에 진입하기도 했다.
DS증권은 "테슬라에 이어 애플 CIS까지 주요 글로벌 고객사에 대한 장기 공급계약을 연달아 확보했다"며 "2분기 일회성 비용 인식과 더불어 최근 라인 가동률이 반등하고 있어 3분기에는 파운드리 적자 폭을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이어 "다만 경쟁사들과의 D램 영업이익을 비교해 보면 HBM뿐 아니라 일반 D램 마진 역시 아쉬운 상황"이라며 "주요 고객사의 HBM4 공급망 진입을 통한 격차 축소 및 DDR5 경쟁력 회복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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