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자동차·기아가 올해 무난한 판매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신차효과와 전기차 보조금 확정 등의 영향으로 내수 판매가 늘어난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글로벌 무역 리스크가 오히려 일시적인 호재로 작용한 영향이다.
시장에서는 올 하반기 미국 판매 성적표가 현대차·기아의 연간 실적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의 신차 가격 인상 여부와 관세율 변경 가능성 등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12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올해 1~4월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는 총 135만4458대, 기아는 총 104만7085대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 대비 현대차는 0.1%(1279대) 증가했고, 기아는 2.5%(2만5288대) 늘어난 규모다. 양사 합산 판매 대수 기준으로는 1.1% 확대된 240만1543대로 집계됐다.
세부적으로 현대차는 올 들어 4월까지 내수에서 4.5% 불어난 23만3870대를 판매했으며, 해외에서는 0.8% 위축된 112만588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기아의 경우 내수와 해외에서 각각 0.2%, 3%씩 판매가 성장한 성적표를 받았다.
당초 현대차·기아가 올해 목표로 제시한 글로벌 판매 대수는 각각 417만4000대, 321만6200대 총 739만200대다. 한 해의 3분의 1이 지난 현 시점에서 추산한 판매 달성률은 32.5%다. 지난해 같은 기간(2024년 1~4월) 누적 판매량으로 계산한 달성률(31.9%)과 비교하면 0.6%포인트(p) 상승했다.
◆ 미국 소비자, 관세 부과 전 신차 구매 급증…현지 판매 전년比 12%↑
현대차·기아의 판매가 호조를 보인 표면적인 요인으로는 생산 증대에 따른 출고 시기 단축과 전기차 보조금 지급, 신차 효과 등이 꼽힌다. 예컨대 현대차는 지난해 신차 양산에 대응하기 위해 아산공장을 셧다운하면서 내수 생산량이 일시 감소했지만, 올해는 이에 따른 기저효과로 판매가 확대됐다. 다양한 신차가 출시된 점도 한몫했다.
내수 시장은 전기차 보조금이 2월 확정된 영향으로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실제로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의 경우 1월 내수 판매는 186대에 그쳤지만 ▲2월 1061대 ▲3월 1185대 ▲4월 783대를 기록했다. 기아 EV3 역시 1월 판매량은 429대 수준이었다. 하지만 2월에 전월 대비 5배가 넘는 2257대가 팔렸고 ▲3월 3032대 ▲4월 3057대로 매달 성장세를 그리고 있다.

지역별 전략 신차 출시도 주효했다. 내수의 경우 현대차는 1월 대형 SUV인 팰리세이드의 신형 모델 판매에 돌입했으며, 기아는 2월 중형 픽업 트럭 '타스만'을 내놨다. 해외에서도 신차 출시가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현대차 크레다 일렉트릭(EV)과 기아 시로스가 있다.
주목할 대목은 미국 관세다. 올해 1월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강력한 무역장벽을 세우기 위해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의 현대차·기아가 공 들이는 주요 시장 중 하나인 만큼 우려가 적지 않았다. 양사는 지난해 미국에서 170만대 이상을 팔았는데, 글로벌 총 판매 대수의 24% 수준이다. 미국 조지아에 생산 거점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완공했지만, 당장 현지 생산 물량을 늘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관세 리스크는 미국 현지 판매를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관세가 부과되기 전 신차를 구입하려는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는 일찌감치 관세 영향에 대비하기 위해 3개월치 재고를 미리 쌓아뒀다. 그 결과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 실적은 올 들어 4월까지 각각 30만9000대, 27만4000대 총 58만3000대(소매 기준)로, 전년 동기보다 12%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 넉넉한 재고 확보, 6월 전 소진…관세율 조정 땐 판매 부담 완화
문제는 현대차·기아의 판매 호조가 지속될지 여부를 예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수에서는 경쟁력 있는 신차를 지속적으로 출시해 판매 모멘텀을 이어나가겠다는 구상이지만, 주력 시장인 미국의 경우 관세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거시적인 경영 환경 변화에도 디 올 뉴 넥쏘와 더 뉴 아이오닉6, EV4 등 신차 판매를 적극 추진하는 동시에 각 시장별 현지화 전략을 고도화해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미국 관세 대응책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현대차·기아가 준비해 둔 미국 내 재고는 이달 중 모두 소진될 전망이다. 회사가 6월2일까지 신차 가격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터라 상반기 동안 미국 소비자들의 선수요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해당 시점 이후부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가격 인상이 예상되며, 이에 따라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만약 현대차·기아가 신차 판매가를 올리지 않는다면 판매량 유지는 가능하겠지만, 관세 부담을 오롯이 감당하기 때문에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판매 감소를 감내하기도 어렵다. 미국이 현대차그룹 차원의 태스크포스팀(TFT)를 꾸릴 만큼 주요 시장이라는 점에서 점유율 축소를 무조건 방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정부가 하반기 중 미국 정부와 수입산 자동차에 대해 부과되는 25%의 관세율 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은 기대해 볼 만하다. 미국은 8일(현지시간) 영국산 자동차에 대해 품목별 관세 27.5%를 연간 10만대에 한해 10%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한국 역시 미국의 주요 협상 대상국에 포함되는 만큼 관세를 조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김진석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발표에 따라 관세 혜택이나 완화 가능성이 높다"며 "6월2일 이후 미국 현지 가격과 인센티브 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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