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원산지가 '택갈이' 된 러시아산 납사를 수입해 온 석유화학사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관세법 위반에 따라 그동안 들여온 러시아 납사 수입액의 최대 30%를 벌금으로 물어야 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산 납사의 원산지 세탁이 이뤄진 운임포함인도(CFR) 방식으로 원재료를 수입해 왔던 롯데케미칼과 대한유화에 이목이 쏠린다. 이들 회사의 경우 납사 수입 시 CFR에 100% 의존해 온 만큼 이번 리스크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최근 석유화학 업계의 최대 화두는 러시아산 납사 우회 수입에 대한 세관 조사다. 납사는 플라스틱의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 납사분해시설(NCC)을 운용하는 업체들이 주로 도입한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2022년 7월 유럽연합(EU)에서 납사로 분류하는 물질을 포함한 품목(HS코드 270112)과 관련해 러시아산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하지만 튀니지와 말레이시아 등 제3국에서 세탁된 러시아산 납사가 여전히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이에 부산 세관은 올해 초부터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수입해 온 납사의 실제 원산지를 확인하는 조사를 벌여왔고, 최근 러시아산 납사 도입을 관세 회피 목적으로 심의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재 한국은 납사에 관세를 적용하지 않고 있어 실질적으로 관세 회피란 전제가 성립되지 않지만 고의성을 묻겠단 엄포 자체가 엄중한 처벌을 염두에 둔 것 아니겠냐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특히 업계는 러시아산 납사 도입 업체에 관세법상 도입가의 30%까지 벌금으로 물릴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부산 세관 관계자는 "업체와 도입 물량에 따라 벌금 규모가 다르며,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양형 기준상 최소 2000만원에서 최대 도입가의 30% 벌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석유화학 업체들 중 이번 조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에쓰오일과 GS칼텍스 뿐이다. 에쓰오일의 경우 납사를 수입하지 않고, GS칼텍스는 납사 대부분을 대주주인 미국 석유 기업 쉐브론으로부터 들여오고 있어서다. 이에 SK지오센트릭과 SK인천석유화학 등 SK이노베이션 계열사, LG화학, HD현대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등 다수 업체가 관세청의 조사대상에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롯데케미칼과 대한유화의 경우 100% 의존해 납사를 수입해 온 만큼 특히나 관세청의 눈총을 받고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납사의 경우 ▲수출자가 상품을 본선에 적재할 때까지 위험과 비용을 부담하는 본선인도(FOB) ▲수출자가 지정된 항구까지 상품을 운송하고 운임을 부담하는 CFR 등 크게 2가지 방식으로 수입되고 있는데 러시아산 납사의 원산지 둔갑 문제가 터진 쪽이 CFR이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과 대한유화가 CFR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해당 방식이 상대적으로 간편하기 때문이다. FOB는 상품을 산지에서 직구매하는 만큼 안정적인 구매와 주도적 수급 플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입자가 선박을 확보해야 하는 시스템이라 석유화학 업체로선 부가적인 비용은 물론 운영상 리스크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대해 롯데케미칼 관계자도 "CFR 방식의 납사 수입은 경제성 확보를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런 이유로 FOB와 CFR 모두 채택해 온 업체들도 올해 CFR 비중을 늘린 상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산 납사에 대한 세관 조사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에게 큰 짐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간 유통 과정에서 택갈이가 이뤄지는 만큼 최종 구매자 입장에서는 원산지를 알 수 없는 데다, 안 그래도 중국에 밀리는 원가경쟁력이 추가로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러시아산 납사가 싼데 앞으로 사지 못하면 중국 등 경쟁국에 비해 원가 경쟁력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중국의 저가 공세 등으로 고사 위기에 내몰린 만큼 제재 처분에 대한 정부의 고민도 크겠지만, 외신까지 보도되고 규모가 큰 사안이라 대충 넘어갈 순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롯데케미칼과 대한유화가 러시아산 납사 수입 금지 이후 들여온 CFR 물량 중 러시아산이 있는진 확실치 않다. 러시아산 납사 수입에 대한 제재와 벌금 또한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석유화학 업체들이 CFR을 통해 수입한 러시아산 납사의 물량과 가격도 밝혀지지 않은 만큼 벌금 규모는 어림하기도 힘들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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