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은행이 지주사 체제 전환을 공식화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추진 속도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경영진 교체 이후 전략의 방점이 '건전성 제고'로 이동한 데다, 비은행 계열사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 여건도 녹록지 않아서다. 여기에 금융지주 설립의 전제 조건인 수협법 개정 논의마저 본격화되지 않으면서 지주사 전환은 장기 과제로 밀린 모습이다. 딜사이트는 수협은행의 지주사 구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구조적 요인과 현재 좌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임초롱 기자] 수협은행의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자본 확충뿐 아니라 수산업협동조합법(수협법) 개정이 선결 과제로 꼽힌다. 현행 법체계 아래서는 금융지주 설립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입법 논의 없이는 지주사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앞서 농협중앙회도 2011년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개정 덕분에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한 뒤 지주사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이후 계류 중인 수협법 일부 개정안은 10여 건에 이르지만, 대부분 내부통제 강화나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에 따른 수협 본점 이전 근거 마련 등 제한적 사안에 그친다. 지주사 설립 근거나 출자 한도 완화를 골자로 한 개정안은 현재까지 발의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수협은행의 지주사 전환이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수협은행 안팎에서는 농협법 개정 사례가 유력한 벤치마킹 대상으로 거론된다. 협동조합 체제에서 출발한 농협중앙회는 2011년 농협법 개정을 통해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이른바 '신경분리'를 단행했고, 이를 기반으로 지주사 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법 개정은 지주사 설립 근거를 명문화하고, 자회사 편입을 위한 출자금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했다.
2009년 정부 주도로 신경분리 방안이 확정된 이후 입법예고, 농민단체와 농협중앙회 의견 수렴, 정치권 협의를 거쳐 2년여 만인 2011년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국회·이해관계자 간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지 않으면 개정이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현행 농협법은 농협중앙회 산하에 경제지주(농협법 161조의2)와 금융지주(제161조의10)를 각각 둘 수 있도록 명시하고, 지주사 산하 자회사 편입도 가능하도록 특례를 뒀다. 특히 농협중앙회가 지주사에 대해 자기자본의 100%까지 출자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면서 '1중앙회·2지주' 체제를 완성했다. 이를 통해 현재의 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농협은행 등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반면 수협법은 2016년 개정을 통해 신용사업을 분리해 수협은행을 수협중앙회 자회사로 둘 수 있는 근거(수협법 제141조의4)만 마련했을 뿐, 금융지주 설립을 전제로 한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현행 체계에서는 수협중앙회가 추가로 금융지주를 설립하거나, 은행 외 복수의 금융 자회사를 거느리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법적으로 사실상 차단돼 있다.
출자 한도 규정 역시 걸림돌이다. 수협법은 수협중앙회의 타법인 출자를 원칙적으로 자기자본의 2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법 개정을 통해 지주사 및 계열사 출자 한도를 대폭 확대한 것과 대비된다. 이 같은 출자 제한은 향후 비은행 계열사 인수 시 자본 투입 규모를 제약하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인수합병(M&A) 전략과도 직결된다. 수협은행은 지난해 9월 트리니티자산운용을 인수해 수협자산운용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지주사 전환 발표 이후 처음으로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확충했다. 다만 당시 인수 대상은 자본금 30억원, 설정원본액 기준 운용자산(AUM) 1494억원 규모로 크지 않은 자산운용사였다. 출자 한도와 자본 여력을 감안하면 대형 증권사나 캐피탈사 인수에 나서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정치적 변수도 적지 않다. 수협법은 해양수산부 소관 법률로, 개정 과정에서 정부 부처 협의와 국회 논의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수협이 협동조합 체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합원 공감대 형성과 내부 의사결정 절차 역시 선행돼야 한다. 농협 사례처럼 정부 주도의 정책적 드라이브가 형성되지 않는 이상 단기간 내 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농협과 수협의 사업 규모와 정치적 위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농협중앙회가 신경분리를 추진할 당시와 비교하면 수협의중앙회 체급과 정책적 파급력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에서 입법 동력 확보가 또 다른 과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수협은행의 지주사 전환은 자본 문제를 넘어 제도적 장벽을 동시에 넘어야 하는 과제다. IRB 승인으로 자본비율이 개선되더라도, 법 개정 없이는 지배구조 전환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자본'과 '입법'이라는 두 축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2022년 당시 지주사 전환을 발표했을 때나 현재 기준으로도 국회와 정부, 조합원 간의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한 관련 법 개정 작업은 아직 이뤄진 게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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