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했지만, 정작 국내 거래소는 불투명한 제도에 묶여 그에 걸맞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거래소가 주춤하는 사이 글로벌 거래소들은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며 한국 투자자들을 흡수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바이낸스가 고팍스 인수를 승인받으며 '직접 상륙'이 현실이 됐다. 이번 기획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정체와 이용자 유출에서 시작된 균열이 어떻게 글로벌 플랫폼의 침투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국내 제도가 드러낸 허점을 짚어본다. 해외 거래소의 습격은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했다. 개인 투자자만 놓고 보면 사실상 세계 최대 수준이다. 그러나 제도적인 제약이 발목을 잡으며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1,2위인 업비트·빗썸이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법인 투자와 레버리지 상품, 외국인 투자 제한 등 규제 장벽 탓에 자금과 이용자가 해외 거래소로 이탈하는 모습이 최근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거래 규모 기준 2위 국가다. 개인 투자자만 놓고 보면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를 하고 있다. 이러한 바탕에는 안정적인 국내 거래시스템이 뒷받침됐다. 국내 대표 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은 안정적인 시스템과 편리한 사용자 경험(UX)으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경쟁도 가능한 거래소로 꼽힌다. 하지만 법인 투자와 레버리지 상품, 외국인 투자 제한 등 규제의 벽에 막혀있다.
국내 거래소의 한계는 자금 흐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 거래소나 개인지갑으로 출고된 금액은 지난해 상반기 74조8000억원에서 하반기 96조9000억원으로 반년 만에 29.5% 늘었다. 올 상반기에는 96조9000억원에서 101조6000억원으로 5% 증가했으며 지난해에 이어 지속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출고 건수도 601만건에서 747만건으로 24.3%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도 747만건에서 1026만건으로 37.3% 크게 뛰었다. 국내 시장이 규제에 갇혀 있는 사이 자금과 이용자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거래소가 보안과 시스템 안정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 입지를 키우기에는 제도적 족쇄가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업비트와 빗썸 역시 베트남 등 해외 시장을 교두보 삼아 외연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국내 제도적 한계를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응이다.
국내 거래소의 기술력과 두터운 투자자 풀은 글로벌 기업들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글로벌 프로젝트 WLFI가 빗썸과 협력을 맺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규제의 틀에서는 이러한 경쟁력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규제 리스크 가운데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법인 참여 제한이다. 올해 6월부터 국가기관·비영리법인 등에 한해 일부 '현금화 목적' 거래만 허용됐을 뿐 일반 기업은 여전히 가상자산 투자 시장에 들어올 수 없다. 해외 기업들이 비트코인·이더리움·솔라나 등을 전략적으로 보유하는 '디지털자산 트레저리(DAT)' 모델을 확산시키는 동안, 국내 기업은 기술·자산 확보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이대로 가면 우수한 이용자 기반과 기술력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내 시장만 침체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특히 해외 거래소가 제공하는 레버리지·파생상품, 법인·외국인 투자자 서비스는 국내 이용자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작용한다. 국내 거래소가 구조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가 이용자 유출의 핵심 원인인 셈이다. 실제로 일부 해외 미신고 거래소는 국내 접속 차단에도 불구하고 우회 이용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피해 발생 시 법적 보호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리스크로 지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가 보유한 기술력과 이용자 기반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지만, 제도적 제약 탓에 시장 확대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인 투자 허용과 규제 합리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국 시장은 해외 거래소의 '이용자 공급처'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남은 과제는 정책이다. 법인 참여와 파생상품 허용, 외국인 투자 유치 등 제도적 장벽을 단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규제와 활성화 사이 균형을 찾지 못한다면, '1류 이용자·거래소'를 보유한 한국 시장은 해외 거래소의 공세 앞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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